이 글을 읽기 전에 당신이 먼저 알고 있어야 할 아주 중요한 역사적인 사실이 제 주장의 근거가 될 것입니다.2014년 8월 15일 광화문에서 열린 교황 프란치스코님의 미사식입니다.오늘 제가 올린 역사적 내용이, 모두 이 날 한 곳에서 만난 사건입니다.




<한국천주교 일구고 피로써 신앙 지킨 순교자 124위> | 연합뉴스




참고사항입니다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는 개표부정 선거라서 완전히 무효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개표 부정사건의 끝자락에 서있고,반드시 이 사건은 그 베일을 벗겨야만 합니다.이 사건의 베일이 벗겨지길 원하는 것은 인간들인 우리 뿐만 아니라,오히려 하느님이십니다.그래서 이 사건은 반드시 그 베일을 벗겨 낼 겁니다.스스로 ,아니 하느님께서 그렇게 할 겁니다.하느님은 당신이 믿건 안 믿건 정말 살아 계신 분입니다.


하느님이 유태인들을 통해서, 이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가 있으며, 그 조물주 하느님은 어떠한 존재이며, 또 인간은 누구인가,왜 이 세상은 온통 부조리하며,죄악으로 가득찼는지,가르치는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자기가 독실한 신앙인이라고 믿는 개신교인이면서도, 아직도 성경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성경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여기 클릭 ☞성경(창세기)의 재발견-유전학 DNA,언어학,고고학발굴(인류학),성서권수차이  (0)


그 분은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단 정의로운 사람의 기도를 하느님께서는 들어 주시고,사악한 기도는 물리칩니다.


사악한 사람의 기도는 악마가 들어 줍니다.특히 악마에겐 저주의 기도가 잘 먹힙니다.

그래서 최순실의 기도는 통했고,자기가 믿는 것이 우주의 기운(또는 하느님)이라고 믿는 중입니다.



우리는 모르고 있었지만,이 거대한 거짓의 역사는 이미 120여년동안,철저하게 악마의 힘으로 일본에게 식민지가 되고 이승만정권에게 장악되며 민족동란을 겪고 박정희가 지배되기까지,완전하게 하나의 힘,악마에 의해서 진행되는 중이었네요.그 과정은 이렇습니다......



아아,한가지 더 역사적인 일을 고찰하기 전에,참고하실 사항입니다. 한 가지, 제가 직접 경험한 그 악령에 관하여,고백할 내용입니다.저는 12월10일까지도 열렬한 이재명 지지자였네요.과거청산,부패한 세력을 제거하기 잘못된 역사청산에서,저는,문재인은 너무 약하다고 생각 중이었고,오직 이재명만이 해낼거라고 굳게 믿던 중....


그러던 중,한 이틀을 연거퍼 지독한 악몽에 시달렸고,저는 스스로 깨달았네요...이게 다 이재명지지 땜에 생긴 일임을,그 날 이후 전 이재명지지를 완전히 포기했습니다.그리고 제가 그 포스팅을 올린 이후, 그 지독하던 악몽도 사라졌답니다.이게 무슨 이유인지는 알만한 사람만 압니다.그렇게 지지를 바꾸면서 올렸던 그 날의 그 포스팅입니다.궁굼하다면 클릭 ☞박근혜탄핵 VS 노무현탄핵(장막 뒤에 악마 김기춘,고장난 저울이 있다) (6)




첫번째는 일본에게 충성한 이완용과 역사 오적에 해당되는 친일파들을 통하여 


그 중심에 노론벽파가 있습니다.정약용을 비롯한 조선선비들 중에서도 참지성인들,남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었던 천주교 순교자의 피가 뿌려진 때(1801년,묘하게도 미국건국 시기입니다.), 악마가 기를 쓰고 이 땅을 점령하기 위해 활동을 시작합니다.그 대표적인물이 바로 추사 김정희의 제자였던 대원군과 민씨 일파와의 권력 싸움,이들의 권력욕을 파고 들어갑니다.(악마는 늘 권력욕을 탐하는 자들을 사냥하는 중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영삼이고 지금  이재명입니다.그래서 이재명은 위험합니다.그의 정치 데뷔는 초기에는 김영삼처럼,안철수처럼,분명 순수했지만,결국 악마에게 걸려 들면 자기가 걸려든 것도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기도하면 기도하는대로 이루어지니까요... )



두번째는 자기 조상에게 증오를 품고 성장한 이승만을 통하여


이 과정에서 왕손후손인 이승만일가가 몰락하며, 이승만은 무능하기만한 자기 조상(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을 안고 미국에 들어갑니다.서재필과의 만남....그래서 가족사에 상처가 많은 사람은 대통령이 돼서는 안됩니다.이재명이 그래서 부적격자입니다.그런면에서 타고난 인격자로서 마치 조선선비를 보는듯한 인물인 문재인이 우리의 희망입니다.그 사람에겐 증오심이 없고,이러한 우리 현대사의 흥망성쇠과정을 온몸으로 체험한 산 증인,무엇이 문제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세번째는 김일성과 최태민입니다.


두 사람 모두 북한의 같은 지역에서 같은 해에 태어나서 같은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학교교육을..



네번째가 바로 박정희와 박근헤입니다.......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악마의 마지막 몸부림입니다.우리는 지금 그 현장을 보고있는 중입니다.한국시간으로 2016년 12월24일 박근혜탄핵집회가 열릴 때, 특히 6시무렵의 소등시간에,당신들은 반드시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사악한 최순실과 박근혜의 우주의 기운(악마의 지배력)을 물리칠 기도.....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큰소리로 기도하십시요...


무종교라거나 타종교인이라면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제발 정의가 이길 수 있도록 해주세요....아멘하십시요....소리내기 창피하면 제발 마음으로라도 하십시요.사악한 우주의 기운을 물리칠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 2013년 9월중순에 남겼던 포스팅을 오늘 2016년 12월 23일 텍사스시각 오후 1시 20분경, 이 포스팅을 수정해서,재발행하며 급하게 올리는 중입니다.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오늘 느긋하게 커피 한잔하면서 어제 포스팅하다가 실패한 걸 다시 수정하여 완성할 계획으로 시작했습니다.


평소대로 저는,제 서재(차고옆공간에 나를 위해서 스티브가 만들어 놓은 홈컴잉데이 깜작선물용 서재는 동굴처럼 일상생활에서 떨어진 공간이고,제가 서재에 있는 동안은 스티브도 되도록이면 출입을 삼가하는,저만의 독서와 글스기를 위한  비밀의 공간)에서,컴퓨터 켜고,킨들로는 우병우 청문회에 관한 네티즌들의 피드백(오유게시판,유재일의 분석,다음과 네이버 실시간검색어 클릭하여 여론읽기용 댓글 탐색 등등...을, 듣고 있던 중입니다.


컴퓨터바이러스 청소 중이라서 아예 글쓰기는 시도도 못한 채...어제처럼 글 작성하다가 내용이 날라가는 걸 방지하고 싶었기에....제 블로그에 들어온 사람들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평소대로 유입경로 따라 다니며 제 블로그유입자들의 성격을 분석 중에,다음 검색에서 만난 이 자료,미국역사 토마스제퍼슨 취임....


그렇게 시작된 이 포스팅 읽기(무려 3년 만에) ....이 포스팅은 원래목적에서 두번이나 재발행된 셈입니다.한번은 7년 전이었던 2009년도에 처음 만남자료가 다문화미국역사(한 네티즌블로그자료)였고, 다시 2010년인가? 미국시민권시험용도로 미국역사공부하다가 만났던 월척으로 이 토마스 제퍼슨 취임연설문과 원문을 언제인가 다시 써먹을 용도로 이 포스팅에 짜집기로 올렸다가,다시 2012년 대통령선거 부정개표논란이 뜨거울 당시 이 표창원이 나오는 동영상을 켑쳐해서 모아 둘 장소가 애매해서 여기 끼워넣었던거고...


2013년에 다시 중단됐던 이 블로깅을 다시 시작할 무렵 전,거의 절만의 포스팅을 삭제하는 중이었고,너무 쓰잘데기없는 글들이 많았고 이제부터는 천주교신앙인으로서 이 블로그를 운영할 계획이었으므로 대부분 삭제된 글들이 정치주제의 글이거나 천주교주교들욕하는 글들...등등,주로 인터넷에서 퍼온 자료들 중심으로 지웠네요..그렇게 무차별로 지워갔던 글들 중에서도 아깝다싶은 자료만 오려다가 여기저기 기워넣다보니,중요한 자료도 어디다 넣었는지 나자신마저도 모르는 사태...


그렇게 남겨졌던 이 동영상에 뜬 표창원얼굴....이런 이유로,사실 여기다 이걸 실어 놓고도,나자신이 이 내용을 전체 듣기해 본 적도 없었네요...그간 사람들이 표창원,표창원....인기폭발을해도 그 사람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가 오늘은 이 동영상을 만난 김에,직접 표창원의 음성을 듣고 그가 말하는 내용을 통해서 그가 누구인지 알아 볼 냥으로 동영상을 틀어놓고 영상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처음 시작부분을 약 20분 동안 듣고있었던 거죠...그래서 이 동영상이 어떤 사태에서 일어난지 짐작도 못한 채, 흘려듣기하던 사람들의 말싸움들...특히 신경을 거슬리게하는 여자의 고성의 목소리,이 따위 소음을 듣느니 차라리 꺼버릴까? 생각할 틈도 없이 집중했던 청문회소식들...그러다가 드디어 사건의 내막이 짐작되면서 이 동영상에 집중한게 거의 20분째 지점...


이렇게 내 작업은 동영상에 집중되기 보다는 피드백읽기에 더 집중됐기에 무시하고 거의 20분 정도를 끄지않고 그렇게 여기저기 사람들의 청문회에 관한 느낌들을 따라다니는데....점점 더 동영상에 나오는 사태파악이 정리가 되면서,결국 이 동영상이 과천에 있는 선관위를 찾아가서 선거부정에 관련된 공무원들을 만나기위한 시도가 거절 당하면서 생겨난 헤프닝임을 알게 됐네요.





 여기부터 원래의 글이 시작됩니다.스크롤압박이 심합니다.먼저 동영상을 켜고 관심이 있다면 토마스제퍼슨의 명문장을 모두 감상하십시요.토마스 제퍼슨이야말로 삼권분립을 만들어서 정착시킨 위대한 정치가입니다.들리는 속설에 의하면 그는 뛰어난 정치인이었지만 연설에는 약했다네요...즉 이론과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한 교육자였지만 선동하는 연설에는 취약했다.....연설만 잘하는 사람이 좋은 건 아니다...



아마도 이 앞에 있던 일부 내용은 삭제한듯 하네요.........그래서 글이 뜬금없이 시작됩니다...→ 그런데,바로 이러한 아비규환같은 세상에서,폭력으로 지배되던 무법천지의 상황 하에서, 미국이 건국되었다는 것은 일종의 희망이기도 합니다.국가가 없는 상태의 미국이란 나라의 약육강식의 아비규환에서,그야말로 맨주먹으로 거인족인 영국제국주의자들을 물리치고 미국을 건국했다는 사건이야말로 기적입니다.그래서 미국에서 시작된 삼권분립의 민주주의는 인간의 능력에서 니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작품임을, 저는 확신합니다! 

 

하느님이 현존하심을 믿고 도와달라고 진심으로 청원하면, 늘 그 청원을 들어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입니다.이렇게 나약한 인간 고난에 떨어진 인간을 외면하지 못하는 하느님은 우리들의 조상들이 믿던 바로 그 하늘입니다.명심보감 첫 가르침이 바로 하늘이 선한사람에게 복을 내리고 악한 사람에게 벌을 내린다는 (子-曰爲善者는 天報之以福하고 爲不善者는 天報之以禍니라) 자명한 진리를 가르칩니다.

 

오직,하늘을 두려워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경천애인(敬天愛人)은 우리 조상들의 미덕이었고,그러한 조상덕을 톡톡하게 누린 한국사람들,어처구니 없게도 돈이 최고라는 황금만능주의자들인 서구인들에게 속아서,아직도 진화론을 진리라고 믿도록 후손들을 가르치며 친일파들에게 무릎을 꿇고 그들의 노예가 돼가는 중입니다.친일파들이 누구인가요? 바로 운좋게(?) 우연히 일본에서 공부하거나 미국에 유학갈만한 재력으로 최첨단의 문명해택을 가장 먼저 받은 사람들,그야말로 재수가 좋아서 먼저 서구문화혜택을 누리는 자들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이 재능이 좋아서 학자가 되었고 정치가로 성공한 것이라고 믿는 중입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정신만이 앞으로 한국인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느님은 분명히 살아있는 존재입니다.그러니 이제라도 진화론이란 최면술에서 깨어나서 참진리를 보는 안목을 기르세요.거짓말하는 자들에게 속지 마세요.악마의 가장 큰 능력은 그럴싸한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잘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거짓말을 수치스러운 줄도 모르고 척척하는 놈들은 모두 악마의 종들입니다.바로 지금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세력이요,수구꼴통들의 모습입니다.진화론이 아직도 과학적사실이라 믿는 사람이라면,여기 클릭 ☞DNA지도,유전자풀(Gene pool) -(펌)인간학적 고찰

 


 

 

 

 

 

지금 저는 미국시민권인터뷰를 앞두고,본격적으로,작심하고서 심도있는 미국역사를 공부하는 중입니다.

 

 

행정,의회,사법의 분리라는 삼권분립에 기초한 진정한 민주주의의 산실은,1776년도 미국이 건국되는 현장에 있습니다.학생들 뿐 아니라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이러한 사실을 잘 모릅니다.이론적으로는 우리는 민주주의가 좋은 줄은 압니다.경험적으로 공산당 빨갱이가 나쁜 줄도 압니다.그러나 정확하게 이 민주주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모릅니다.민주주의가 무어냐,어떻게 민주주의가 이 현대역사에 나타났느냐? 그 경로를 아느냐? 하고 물으면? 그저 막연하게 영국의 권리장전,루소의 국가기원론 등등을 연상할 뿐,그 정확한 역사는 모릅니다.

 

또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정확한 미국역사를 모릅니다.특히 민주주의(삼권분립)의 아버지인 토마스 제퍼슨을 모릅니다.이것은 비극입니다.지금이라도 민주주의의 산실인 미국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삼권분립의 아버지인 토마스 제퍼슨을 깊이 있게 공부하며,대한민국에 어울리는 참민주주의를 만들어야할 의무가 지금 모든 한국인남녀성인들에게 있습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정치가가 바로 토마스 제퍼슨입니다.

그 이유를 앞으로 2개의 포스팅으로 소개할 생각입니다.

 

 

원래 이 자료는 미국의 다문화주의(1)란 제목으로 맨 하단에 소개된 자료로서,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출한 어느 한국 이민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지금은 삭제된 블로그입니다)이 자료를 퍼온 것이 2009년10월로서,이 당시만해도 저 자신이 미국역사에는 완전히 입문도 안된 초짜로서 이 자료를 월척이라 생각했네요.그러다가 요즘 시민권인터뷰에 필요한 미국역사공부할 자료로 이 글을 읽다가보니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완전히 장님 코끼리더듬기로서 반미감정까지 얽혀서 지극히 어설픈 미국역사관,바로 이것이 현재 한국인들이 알고있는 미국역사관의 한 사례에 불과합니다.

 

이게,미국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강준만이가 미국을 미국인보다 더 잘 안다고 허풍을 칠 수 있는 이유지요!!

 

먼저,이 글에서는 민주주의탄생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정복해야 할 2개의 자료를 소개합니다.이어서 미국의 다문화주의(2)에서는 미국역사를 크게 4개로,1,독립선언에서 남북전쟁까지 2,남북전쟁이후 새로운 이민물결과 인디언의 운명 3, 유럽의 불똥이 만든 나라(무신론의 지배,마르크시즘과 2차대전까지) 4,인류최악의 재앙이 시작되다( 1960년대 히피문화와 페미니즘)로 분류해서 소개할 생각입니다.

 

 

1,토마스 제퍼슨 대통령 취임연설(1800년)

2,독립선언문(1776년)

 

 

이 자료가 실린 미국대사관에서 제공하는 자료실의 출처는 이 블로그의 오른편 링크에서 시민권시험에 필요한 미국역사공부를 클릭하시면 정말 좋은 알짜 자료들이 많네요.모든 한국인들은 민주주의를 공부해야만 합니다.강준만같은 엉터리들,소위 미국유학했다는 지식인들의 의견은 이제 폐기시키고,시민 각자가 스스로 미국역사를 공부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그 자료는 무진장합니다.그렇게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 줄 유산으로 참민주주의를 만들려면 반드시 공부해야할 것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교육이 중요하다고,늘 강조했습니다.

 

진정한 인본주의,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국가의 성립조건은 인간 각자의 지식과 지헤에서 나옵니다.참민주국가,식민지에서의 해방,노에가 없는 사회란,시민 각자가 교육받은 일등교양인이 되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고,그래서 특별하게 올린 자료입니다.토마스 제퍼슨,그의 철학이 짙게 베인 두 편의 글!! 감동 자체입니다.

 

 

성경은 역사적 진리다.무신론자 클릭 ☞5 사도요한은 누구인가-축일 12월27일(모세와 여호수아,베드로와 요한)

 

 

1,토마스 제퍼슨 대통령 취임연설(1800년)

 

 

1800년 제3대 미국대통령으로 선출된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 독립선언문, 버지니아주의 종교 자유법 1784년과 1785년의 서부토지조례, 그리고 기타 많은 공문서의 기안자이자 버지니아 주지사, 주 프랑스 미국공사, 국무장관, 미국 부통령 직을 역임했다. 미국의 민주주의 신념의 대변자들 중 으뜸가는 능변가 였던 제퍼슨은 당시 치솟고 있던 이상주의와 광범한 실용주의를 겸비한 인물이었다. 즉, 그는 학자, 과학자, 건축가, 변호사, 민주당 창설자이자 실제적인 정치가 였다. 1801년 3월 4일 그의 첫 대통령 취임연설은 민주주의 철학의 고전적인 설명이며, 그 철학과 문체의 아름다움으로 다같이 길이 기억할만한 연설이다.

 

 

 

우리가 거쳐 온 의견 다툼의 기간 동안 토론과 능력 발휘의 활성화는 때때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생각한 바를 말하고 쓰는 데 익숙하지 않은 국외자들을 오도할 수도 있는 양상을 띠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것이 국민의 소리에 의해 결정되고 헌법의 규정에 따라 공포되었기에 모든 사람이 당연히 법률의 의지를 받들 자세를 가다듬고 공동선을 위한 공동의 노력에 힘을 합칠 것입니다. 또한 비록 모든 경우에 다수의 의사가 관철되어야 하지만 그 의사가 올바른 것이 되려면 합리적이어야 하고, 소수도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법률이 평등하게 그것을 보호해야 하며 그것을 침해하는 것은 압제가 될 것이라는 이 신성한 원칙을 모든 사람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민 여러분, 우리 한마음 한 뜻으로 단결합시다. 화합과 애정 없이 자유와 삶 자체마저도 황량한 것이 되는 우리의 사회적 교류를 회복시킵시다. 그리고 비록 인류가 참으로 오랫동안 피 흘리고 고통 받아 온 원인이었던 종교적 편협성을 이 땅에서 몰아냈다고 하나, 만약 그에 못지않게 전제적이고 사악하며 혹독하고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가할 수 있는 정치적 편협성을 용인한다면 우리는 아직껏 이루어 낸 것이 거의 없는 셈이란 것을 상기합시다.

고대 세계의 진통과 혼란의 와중에도, 피를 흘리고 학살을 당하면서도 오랫동안 잃었던 자유를 추구하는 격분한 사람의 몸부림치는 발작을 통해서도 굽이치는 그 큰 물결이 심지어 이 멀고 먼 평화로운 해안까지 미쳤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굽이치는 물결을 느끼고 두려워하는 정도가 더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덜한 사람들도 있어서 이에 대한 안전 조치를 두고서 의견이 양분될 것이란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의견의 차이가 곧 주의(主義)의 차이는 아닙니다. 우리는 동일한 주의(主義)를 가진 형제를 서로 다른 이름들로 불러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가 공화주의자들이며, 우리는 모두가 연방주의 자들입니다. 만약 우리 가운데 이 연방의 해체나 그 공화정 체제의 변경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잘못된 의견이 용인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안전의 기념비로서 방해 받지 않게 유지될 수 있게 합시다. 그 잘못은 어느 때고 이성에 의해 격퇴되는 법입니다.

일부 정직한 사람들이 공화제 정부는 강력할 수 없다고, 이 정부가 충분히 강력하지 못하다고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한 애국자라면 세계의 최상의 희망인 이 정부가 혹시 스스로를 지킬 힘을 결여할 수도 있다는 이론적이고 환상적인 두려움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를 자유롭고 굳건하게 지켜온 정부를 성공적 실험의 절정에서 저버리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나는 이 정부가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정부라고 믿습니다. 나는 이 정부야말로 모든 사람이 법의 부름에 법의 깃발 아래로 달려가 자신의 일처럼 공공질서의 침해에 대항할 유일한 정부라고 믿습니다. 가끔씩 듣기로 인간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타인들을 다스릴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인간을 통치할, 왕으로 변장한 천사들이라도 찾아냈다는 말입니까? 이 물음은 역사로 하여금 대답하게 합시다.

그러니 용기와 신념을 갖고 우리 스스로의 연방제와 공화제의 원칙들을 따르고 연방과 대의정체(代議政體)에 대한 우리의 애착을 밀고 나아갑시다. 다행히도 자연과 넓은 대양에 의해 지구의 4분의 1에서 일어나는 절멸의 대파괴로부터 떨어져 있고, 나머지 4분의 3의 타락상을 용인하기에는 너무 고결하고, 우리 자손들을 천대, 만대까지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선택된 나라를 가졌고, 스스로의 능력을 발휘하고 스스로의 근면에 의해 재산을 취득하고 동포들로부터 태생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동과 그에 대한 동포들의 평가에서 비롯되는 명예와 신뢰를 누릴 수 있는 동등한 권리에 대해 마땅한 이해를 지녔고, 자애로운 종교의 교화를 받고 다양한 형태의 종교에 입도하고 정진하며

 

지금까지 그 모든 형태의 종교는 공히 정직,진리,절제,감사 및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고, 온갖 베풂을 통해 인간의 현세에서의 행복과 내세에서의 더 큰 행복에 기뻐함을 증명하시는 지배적 섭리를 인정하고 경배하며 - 이 모든 축복을 지녔으니 우리 국민이 행복하고 번영을 누리는 데 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그래도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해치지 못하게 하고 그 외의 모든 면에서는 근면과 발전에 대한 노력을 스스로 자유롭게 조정하도록 놓아두며 노동자가 취득한 빵을 그 입에서 빼앗지 않을 현명하고 검소한 정부입니다. 이것이 선정의 요체이고 또한 우리의 지복(至福)을 완결시키는 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여러분에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모든 것을 망라하는 직무의 수행에 착수하려는 이 시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우리 정부의 근본 원칙들과 그에 따른 시정의 구체적인 원칙들을 여러분이 마땅히 이해하셔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일반 원칙을 밝힘으로써 - 그러나 그것의 갖가지 한계를 거론하지는 않는 채로 - 여러분이 알아야 할 원칙들을 가능한 한 최소의 범위 내로 압축해 말하고자 합니다.

 

정치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지위나 파벌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동등하고 정확하게 대우함; 모든 국가와 평화, 교역 및 정직한 우정을 유지하고 어떤 국가와도 동맹 관계를 맺지 않음; 내부 업무를 처리하는 가장 유능한 행정 기관으로서 그리고 반공화제의 추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방벽으로서 주 정부의 모든 권리를 옹호함; 국내의 평화와 국외에서 안전을 위한 최후 보루로서 중앙 정부의 헌법상의 모든 활력을 보존함; 평화적 구제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혁명의 검에 의해 잘려나갈 폐습들의 온건하고 안전한 교정책으로서 국민의 선거권을 빈틈없이 배려함;

 

전제주의의 사활적 원칙이자 직접적 모체인 강제력에 호소하지 않으려면 공화제 국가의 사활적 원칙인 다수결에 절대적으로 따를 것, 평화 시와 정규군으로 교체될 때까지의 전쟁 초기 동안 우리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잘 훈련된 국민군; 군사적 권한에 대한 민간 권한의 우위; 노동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공공 비용의 절약, 우리의 채무를 정직하게 상환하고 공적 신의를 신성하게 보존함; 농업과 그 시녀로서의 상업을 장려함, 지식을 보급하고 모든 폐습은 공적 이성의 법정에 기소함;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인신 보호율의 보호를 받는 신체의 자유 그리고 공정하게 선정된 배심원들에 의한 심판. 이상의 원칙들은 우리보다 앞서 나아가 혁명과 개혁의 시대를 통하여 우리의 발걸음을 이끌어 주었던 찬란한 성군인 것입니다.

우그것들을 얻기 위해 우리 현인들의 지혜와 영웅들의 피가 바쳐졌습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정치적 신념의 강령, 시민 교육의 교과서 및 우리가 신임하는 자들의 근무를 평가하는 시금석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착오나 위급의 순간에 그것들로부터 빗나가는 일이 있더라도 서둘러 걸음을 되짚어 평화, 자유 및 안전으로 이르는 유일한 길을 되찾읍시다.

국민 여러분, 이제 나는 여러분이 내게 부여한 직책을 맡고자 합니다. 여러 하위 관직에서 이 최고 직위의 어려움을 지켜보았던 경험으로 나는 불비한 사람이 취임시의 명망과 호의를 그대로 지니고 이 지위에서 물러나는 법이 드물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탁월한 공로로 조국의 사랑의 품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할 만하고 충실한 역사서의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우리의 최초이자 가장 위대한 혁명적 인물에게 여러분이 걸었던 그 큰 신뢰를 감히 요구하지 않고 나로서는 다만 국사의 적법한 집행이 굳건하게 그리고 능률적으로 이루어질 정도의 신뢰를 바랄 뿐입니다.

 

 

때로는 내가 판단 미숙으로 일을 그르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옳을 때에도 때로는 전역을 조망하지 못하는 입장의 사람들은 내가 틀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내 잘못 - 결코 고의적인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만 - 에 대한 여러분의 관용을, 그리고 만약 모든 부분, 부분을 다 살핀다면 하지 않을 비난을 할 수도 있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대한 여러분의 옹호를 요청합니다. 여러분의 투표에 함축된 승인은 내게는 지난 세월에 대한 커다란 위안입니다. 내 장래의 갈망은 미리 베풀어 주셨던 분들의 호평은 유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봉사를 다함으로써 다른 분들의 호평도 사며 모든 분들의 행복과 자유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의 선의의 후원을 믿고서, 여러분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느낄 때면 언제나 물러날 준비를 갖춘 채, 순순히 그 과업에 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삼라만상의 운명을 지배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협의회들을 최상의 존재로 이끌고 그것들에 여러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순조로운 결실을 내려주시기를 기원합니다.

 



Thomas Jefferson Speech - First Inaugural Address

제퍼슨 연설문의 백미는,미국이민자들이 부패한 유럽대륙,파선중인 유럽대륙호에서 탈출한,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역사적인 사명을 쥔 사람들로서의 각오를 뚜렷한 가치관과 빼어난 통찰력으로 국민들에게 호소한 다는 점이다.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3권분립제도 아래에서의 민주사회의 초석을 놓았던,토마스제퍼슨,그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자료임.


Friends and fellow-citizens, 친애하는 동료 그리고 시민 여러분


Called upon to undertake the duties of the first executive office of our country, I avail myself of the presence of that portion of my fellow-citizens which is here assembled to express my grateful thanks for the favor with which they have been pleased to look toward me, to declare a sincere consciousness that the task is above my talents, and that I approach it with those anxious and awful presentiments which the greatness of the charge and the weakness of my powers so justly inspire.



A rising nation, spread over a wide and fruitful land, traversing all the seas with the rich productions of their industry, engaged in commerce with nations who feel power and forget right, advancing rapidly to destinies beyond the reach of mortal eye when I contemplate these transcendent objects, and see the honor, the happiness, and the hopes of this beloved country committed to the issue and the auspices of this day, I shrink from the contemplation, and humble myself before the magnitude of the undertaking.


Utterly, indeed, should I despair did not the presence of many whom I here see remind me that in the other high authorities provided by our Constitution I shall find resources of wisdom, of virtue, and of zeal on which to rely under all difficulties. To you, then, gentlemen, who are charged with the sovereign functions of legislation, and to those associated with you, I look with encouragement for that guidance and support which may enable us to steer with safety the vessel in which we are all embarked amidst the conflicting elements of a troubled world.


During the contest of opinion through which we have passed the animation of discussions and of exertions has sometimes worn an aspect which might impose on strangers unused to think freely and to speak and to write what they think; but this being now decided by the voice of the nation, announced according to the rules of the Constitution , all will, of course, arrange themselves under the will of the law, and unite in common efforts for the common good. All, too, will bear in mind this sacred principle, that though the will of the majority is in all cases to prevail, that will to be rightful must be reasonable; that the minority possess their equal rights, which equal law must protect, and to violate would be oppression

 


Let us, then, fellow-citizens, unite with one heart and one mind. Let us restore to social intercourse that harmony and affection without which liberty and even life itself are but dreary things. And let us reflect that, having banished from our land that religious intolerance under which mankind so long bled and suffered, we have yet gained little if we countenance a political intolerance as despotic, as wicked, and capable of as bitter and bloody persecutions.


During the throes and convulsions of the ancient world, during the agonizing spasms of infuriated man, seeking through blood and slaughter his long-lost liberty, it was not wonderful that the agitation of the billows should reach even this distant and peaceful shore; that this should be more felt and feared by some and less by others, and should divide opinions as to measures of safety. But every difference of opinion is not a difference of principle. We have called by different names brethren of the same principle. We are all Republicans, we are all Federalists. If there be any among us who would wish to dissolve this Union or to change its republican form, let them stand undisturbed as monuments of the safety with which error of opinion may be tolerated where reason is left free to combat it.


I know, indeed, that some honest men fear that a republican government can not be strong, that this Government is not strong enough; but would the honest patriot, in the full tide of successful experiment, abandon a government which has so far kept us free and firm on the theoretic and visionary fear that this Government, the world's best hope, may by possibility want energy to preserve itself? I trust not. I believe this, on the contrary, the strongest Government on earth. I believe it the only one where every man, at the call of the law, would fly to the standard of the law, and would meet invasions of the public order as his own personal concern. Sometimes it is said that man can not be trusted with the government of himself. Can he, then, be trusted with the government of others? Or have we found angels in the forms of kings to govern him? Let history answer this question. 


Let us, then, with courage and confidence pursue our own Federal and Republican principles, our attachment to union and representative government. Kindly separated by nature and a wide ocean from the exterminating havoc of one quarter of the globe; too high-minded to endure the degradations of the others; possessing a chosen country, with room enough for our descendants to the thousandth and thousandth generation; entertaining a due sense of our equal right to the use of our own faculties, to the acquisitions of our own industry, to honor and confidence from our fellow-citizens, resulting not from birth, but from our actions and their sense of them; enlightened by a benign religion, professed, indeed, and practiced in various forms, yet all of them inculcating honesty, truth, temperance, gratitude, and the love of man; acknowledging and adoring an overruling Providence, which by all its dispensations proves that it delights in the happiness of man here and his greater happiness hereafter --with all these blessings, what more is necessary to make us a happy and a prosperous people?


Still one thing more, fellow-citizens -- a wise and frugal Government, which shall restrain men from injuring one another, shall leave them otherwise free to regulate their own pursuits of industry and improvement, and shall not take from the mouth of labor the bread it has earned. This is the sum of good government, and this is necessary to close the circle of our felicities.


About to enter, fellow-citizens, on the exercise of duties which comprehend everything dear and valuable to you, it is proper you should understand what I deem the essential principles of our Government, and consequently those which ought to shape its Administration. I will compress them within the narrowest compass they will bear, stating the general principle, but not all its limitations.


Equal and exact justice to all men, of whatever state or persuasion, religious or political; peace, commerce, and honest friendship with all nations, entangling alliances with none; the support of the State governments in all their rights, as the most competent administrations for our domestic concerns and the surest bulwarks against antirepublican tendencies; the preservation of the General Government in its whole constitutional vigor, as the sheet anchor of our peace at home and safety abroad; a jealous care of the right of election by the people -- a mild and safe corrective of abuses which are lopped by the sword of revolution where peaceable remedies are unprovided; absolute acquiescence in the decisions of the majority, the vital principle of republics, from which is no appeal but to force, the vital principle and immediate parent of despotism; a well-disciplined militia, our best reliance in peace and for the first moments of war till regulars may relieve them; the supremacy of the civil over the military authority; economy in the public expense, that labor may be lightly burthened; the honest payment of our debts and sacred preservation of the public faith; encouragement of agriculture, and of commerce as its handmaid; the diffusion of information and arraignment of all abuses at the bar of the public reason; freedom of religion; freedom of the press, and freedom of person under the protection of the habeas corpus, and trial by juries impartially selected.


These principles form the bright constellation which has gone before us and guided our steps through an age of revolution and reformation. The wisdom of our sages and blood of our heroes have been devoted to their attainment. They should be the creed of our political faith, the text of civic instruction, the touchstone by which to try the services of those we trust; and should we wander from them in moments of error or of alarm, let us hasten to retrace our steps and to regain the road which alone leads to peace, liberty, and safety. 


I repair, then, fellow-citizens, to the post you have assigned me. With experience enough in subordinate offices to have seen the difficulties of this the greatest of all, I have learnt to expect that it will rarely fall to the lot of imperfect man to retire from this station with the reputation and the favor which bring him into it. Without pretensions to that high confidence you reposed in our first and greatest revolutionary character, whose preeminent services had entitled him to the first place in his country's love and destined for him the fairest page in the volume of faithful history, I ask so much confidence only as may give firmness and effect to the legal administration of your affairs. I shall often go wrong through defect of judgment.


When right, I shall often be thought wrong by those whose positions will not command a view of the whole ground. I ask your indulgence for my own errors, which will never be intentional, and your support against the errors of others, who may condemn what they would not if seen in all its parts. The approbation implied by your suffrage is a great consolation to me for the past, and my future solicitude will be to retain the good opinion of those who have bestowed it in advance, to conciliate that of others by doing them all the good in my power, and to be instrumental to the happiness and freedom of all. 


Relying, then, on the patronage of your good will, I advance with obedience to the work, ready to retire from it whenever you become sensible how much better choice it is in your power to make. And may that Infinite Power which rules the destinies of the universe lead our councils to what is best, and give them a favorable issue for your peace and prosperity. 
 

 

 

2,독립선언문(1776년)

 

 

1775년 4월에 시작된 대영제국과 아메리카 식민지들 사이의 전쟁이 계속되면서 화해전망이 사라지고 완전독립이 식민지들의 목표가 되었다. 1776년 6월 7일 대륙의회 회의 석상에서 버지니아의 리처드 헨리가 “식민지들은 자유롭고 독립된 주가 되어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결의문을 상정했다. 이어 6월10일 독립선언문을 마련하기 위해 한 위원회가 임명되었다. 초안작성은 토마스 제퍼슨에게 위촉되었다. 7월 4일 선언문이 채택되어 서명과 비준을 받기 위해 13개 주의 각 입법부로 보내졌다.

이 선언문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부분은 민주주의와 자유에 관한 정치철학의 심오하고도 웅변적인 성명이고, 둘째 부분은 조지 3세가 미국의 자유 사항들을 전복시켰음을 증명하기 위한 구체적인 불만들을 진술했고, 그리고 셋째 부분은 독립과 독립정책에 대한 지지를 다짐하는 엄숙한 성명이다.

인간사의 진행과정에서 한 국민이 자기들을 타자에게 얽매이게 하는 정치적 속박을 해체하고, 그리하여 스스로 지상의 열강들에 끼어 자연의 법칙과 신의 법칙에 따른 독립적이고 평등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필요하게 될 때는 인류의 의견들을 예절 있게 존중하면서 자신들이 독립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선언해야만 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자명한 진리로 믿는 바,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된다는 것, 그들은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일정한 권리를 부여 받는다는 것, 그리고 이에는 삶, 자유 및 행복의 추구 등이 포함된다는 것, 이러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간들 사이에 정부들이 수립되며, 이들의 정당한 권력은 피치자의 동의에 연유한다는 것, 어떠한 형태의 정부라도 그러한 목적들을 파괴하는 것이 될 때에는 그 정부를 바꾸거나 없애버려 새 정부를 수립하되, 인민들에게 자신들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잘 이룩할 것 같이 보이는 그런 원칙들에 입각하여 그 토대를 마련하고 또 그런 형태 하에 권력을 조직하는 것이 인민의 권리라는 것 등이다.

 

사실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는, 수립된 지 오래된 정부는 사사로운 일시적 이유로 바꿔서는 안되며, 또 모든 경험에 의하면 인류는 악폐라 할지라도 그것을 견딜 수 있는 동안은 자기들에게 익숙한 (정부) 형태를 폐기함으로써 그러한 악폐들을 시정하느니 오히려 참고 견디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항상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부조리와 권리 침해를 끊임없이 일삼음으로써 국민을 절대적인 전제 하에 묶어두려는 의도가 분명할 때는 국민들은 그러한 정부를 떨쳐버리고 자신들의 미래의 안전을 지켜줄 새로운 수호자들을 마련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이렇듯 이들 식민지들은 참을성 있게 고통을 견디어 왔으며, 부득이 구 정부 체제를 바꾸어야 할 필요성에 당면해 있는 것이다, 대영제국의 현 국왕의 역사는 오직 이들 주에 대해 절대적 전제체제를 부과하려는 직접적인 목적만을 지닌 위해와 권리침해가 반복된 역사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공정한 세계에 대하여 그 사실을 제시하는 바이다…

(주: 이어 이 문서는 영국 왕에 대한 불만사례를 약 25 가지로 열거하고 있다… “그는 공공 복지를 위해 필요한 법률들의 재가를 거부하였으며,” “우리의 동의 없이 우리에게 세금을 부과했다.” 등등)

이러한 모든 억압 행위에 대해 우리는 가장 겸허한 표현을 사용하여 시정을 청원하곤 했다. 그러나 청원할 때마다 그 대답은 반복된 위해(危害)였다. 이렇듯 폭군으로 규정 지을 수 있는 그 모든 행동에 의해 그 성격이 드러난 군주는 자유시민의 통치자가 되기에는 부적절하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영국 동포들에게 주의를 불충분하게 환기시켜온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의회가 우리에게 부당한 관할권을 뻗치려는 시도에 대해 수시로 경고해 왔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곳에서의 우리의 이주와 정착상황을 일깨워 주곤 했다. 우리는 그들의 타고난 정의감과 관용에 호소했고, 우리의 혈연에 호소하여, 우리들 상호관계와 통신을 불가피하게 저해할 그 같은 권리침해를 거부하도록 간청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정의와 동일혈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는 부득이 독립을 선언하고 그들을 여타 인류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싸울 때는 적으로 대하고, 평화 시에는 우방으로 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 미국 대표들은 소집된 전체대륙의회에서, 우리 의도의 결백성을 굽어보시는 세계 최고의 심판자에게 호소하면서, 이들 식민지의 선량한 인민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들의 권한에 의해, 다음과 같이 엄숙하게 발표하고 선언한다. 즉, 이들 연합 식민지는 자유독립 주들이며, 또 마땅히 그래야 하며, 그들은 영국국왕에 대한 일체의 충성으로부터 해방되며, 그들과 대영제국 사이의 모든 정치적 결합이 전면 해체되며, 또 마땅히 그래야만 하며, 그리고 그들은 자유독립국으로서 전쟁하고 강화하고, 동맹 맺고 통상하고, 그리고 독립 국가들이 행할 권리가 있는 모든 행동과 일을 수행할 완전한 권한을 보유한다.

그리고 우리는 신의 섭리의 보호에 굳게 의지하면서 이 선언을 지지하기 위해 서로 우리의 생명, 우리의 재산 및 우리의 신성한 명예를 걸기로 다짐하는 바이다.

 

 

 

미국독립선언 Declaration of Independence , 美國獨立宣言

두산백과 - 1776년 7월 4일 아메리카합중국 독립을 내외에 선언한 일.

미국의 독립선언존 트럼벌이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을 기리면서 그린 작품의 사본.

 

1775년 영국 본국군과 아메리카 식민지군 사이에 무력충돌이 발생하여 식민지의 반영(反英)항쟁은 무력항쟁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식민지측은 본국으로부터 독립할 것은 생각하지 않고 영제국(英帝國)의 일환으로서 머무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외국의 원조를 받아야 할 필요와 더불어 내부적으로 급진파가 대두하면서 독립의 기운이 고조되었다. 여기에는 T.페인의 공화제 독립(共和制獨立)을 호소하는 정치 팸플릿 《커먼센스 common sense》 등의 영향도 있었다. 이러한 기운에 힘입어, 75년 5월 제2차 대륙회의(大陸會議)에서는  각 식민지에 대하여 새정부의 수립을 권고하였으며, 이에 각 식민지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사실상 독립 상태로 들어갔다.


한편 대륙회의에서 버지니아 대표 R.H.리의 독립의 결의(決議) 제안에 따라 6월 7일에 5인의 기초위원이 임명되어 미국 독립선언문를 작성하였다. 원안은 위원의 한 사람인 T.제퍼슨이 작성하였고, 역시 위원인 B.프랭클린과 J.애덤스가 약간 가필하여 대륙회의에 제출하였다. 이는 7월 4일 전원일치로 가결, 공포되었는데, 이것이 이른바 독립선언이다.이 독립선언문은 간단한 전문(前文)과 독립선언을 한 결문(結文)을 제외하면 대체로 2부로 나누어져 있다. 모두가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한 것이지만 전반은 일반적인 자연권(自然權) 사상을 전개한 것이고 후반은 구체적으로 영국 국왕의 압정에 대한 사실을 열거한 것이다. 즉 전반은 생명 ·자유 및 행복의 추구라는 천부의 권리가 존재함을 지적하면서 그 권리의 확보를 위하여 정부가 조직되어야 한다는 정부의 정당성을 주장함과 동시에 이러한  정부의 정당성은 ‘피치자(被治者)의 동의(同意)’에 유래한 것이라고 말하여 혁명권(革命權)의 존재를 주장하였다.

후반부는 전반보다 훨씬 긴 것인데 영국 국왕의 악행을 매우 구체적으로 열거하였다. 예를 들면 국왕은 ‘많은 사건에서 배심(陪審)에 의한 재판의 이익을 박탈하고’라는 등의 말이 여기에 나온다. 선언문의 기초를 작성한 제퍼슨은 독립선언은 독창성을 가진 것이 아니고 아메리카인의 마음의 표현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J.로크의 사상 및 오랜 세월 동안 본국과의 항쟁을 통하여 배양해온 이념을 정착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독립선언에 대해 C.베커는 긴급사태에 적응하기 위하여 새롭게 구성된 낡은 이론이라고 지적하였다.

 

 

미국의 다문화주의(1)

크롬웰의 호국경시대가 도래 하면서 이번에는 영국 귀족인 영국 국교회 교도들이 버지니아의 체서피크 만으로 이주하여 굴지의 가문으로 자리를 잡아감 이들 상당수는 버지니아 외에도 뉴욕과 캐롤라이나, 조지아 같은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1633년 영국의 카톨릭교도들은 볼티모어경을 중심으로 메릴랜드에 정착, 그리고 1681년 영국의 퀘이커 교도들은 윌리엄의 주도로 펜실베니아 식민지를 건설. 영국인들이 아메리카에 정착한 것은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이유 이러한 종교, 정치적 이유는 사회, 경제적 배경과 맞물려있으며, 또한 종교적, 정치적 이유만으로는 이주에 한계 초기에는 소수의 종교집단들이 아메리카를 피난처로 선택하였지만, 그 식민지를 실제적으로 유지하고 팽창하기 위해서는 일반 평민들의 계속적인 이주가 필요


16-17세기 영국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경험, 인구 증가에 따라 화폐 경제와 인플레이션은 사회적 불안 요소가 됨, 인구 폭등은 심각한 도시 문제를 불러일으킴.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거리의 유랑자 역시 증가하여 사회 혼란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고, 농촌의 경우도 마찬가지. 인구가 늘어나면서 의복에 대한 수요도 늘어남, 토지 소유자들은 곡물 재배보다 이윤이 훨씬 많이 남는 양모 생산을 위해서 목축업으로 전환하였고, 개방된 공유지에 울타리를 쳐서 사유재산화, 즉 인클로저 운동을 벌였다. 소규모 농업이나 소작농에 종사하는 농부들이 시골을 버리고 무작정 도시로 이주하면서 도시 문제는 한층 심각. 여기서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과 성공에 필요한 원동력을 찾을 수 있음 도시의 거리에서 방황하는 수많은 실업자들, 이들은 식민지에 정착시켜서 기업의 이윤을 챙기려는 기업가들, 거기다가 국가적 명예를 위해서 이주자들을 후원했던 정부 이 모든 것이 아메리카 식민지를 가능하게 만든 사회, 경제적인 배경. 영국의 정치, 종교적 혼란을 무마할 돌파구로서도 새로운 식민지 건설은 그 시대의 필연적인 결과.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들>아일랜드는 12세기 후반부터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아일랜드인들은 끊임없이 영국의 통치에 저항하였고 반란을 일으킴. 아일랜드는 형식적으로는 영국의 영토였지만 실제적으로는 영국이 아일랜드를 통치하기란 어려웠다. 1603년 제임스 1세가 등극하면서 북아일랜드 지역인 얼스터에 신교도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했고, 그곳으로 이주한 신교도들의 대부분의 저지역(lowland) 스코틀랜드인 들이었음


11세기 중반부터 영국 왕은 스코틀랜드의 종주왕으로 인정받아 스코틀랜드를 통치하였지만 아일랜드와 마찬가지로 민족 의식이 강한 스코틀랜드인의 반발과 저항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음 그러던 차에 제임스 1세가 저지대 스코틀랜드인 들이 아일랜드의 얼스터로 이주하도록 유도, 그들에게 지대(地代)를 낮추어 주고 장기 임대를 약속했으며, 또한 장로교도들인 그들에게 종교적 자유를 보장해 주면서 이주를 종용, 이에 힘입어 스코틀랜드인 들은 북아일랜드로 대거 이주. 1610년 부터1640년까지 약 4만 명이 이주 그러나 아일랜드로 이주한 스코틀랜드인과 아일랜드인이 갈등하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 카톨릭 아일랜드인과 장로교 스코틀랜드인 간의 전쟁은 끊이지 않았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8세기에 접어 들어 영국 경제가 악화 영국이 자국 상업을 보호하기 위해 아일랜드 산 모직 상품에 대한 금수(禁輸)조치를 취하자 북아일랜드 경제는 점차 황폐 여기에 영국이 약속을 깨고 종교적 관용 정책을 철회하고 공직자에게 영국 국교를 강요하자 스코틀랜드인의 불만이 커짐.


결국 1717년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들은 아메리카로 향한 대 이주를 시작, 대부분 가난한 농부들이었던 스코틀랜드인 들은 이주비를 댈 수 없었기에 이주를 주선하는 회사에게서 이주비를 제공 받는 대신 일정 기간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하인으로 생활한다는 계약 하인으로 대서양을 건널 수 있었음. 그들은 대부분 필라델피아로 이주하였고 점차 메릴랜드, 버지니아, 캐롤라이나 지역으로 이주 범위를 넓혀 감. 그러나 그들은 이 지역들이 이미 영국인이 정착한 지역이었기에 영국인들이 적게 사는 내륙지역으로 이주. 그래서 셰넌도어벨리와 컴벌랜드를 중심으로 동부해안선 지역에는 영국인들이, 서부 내륙 지역에는 스코틀랜드인 들이 정착. 수세기 동안 영국과의 갈등을 경험한 스코틀랜드인 들은 될 수 있으면 영국인들과의 접촉을 피하려 했고 영국인들 역시 접촉을 꺼려했기에 두 민족은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고 지낼 수 있었음.


<독일인들의 경우> 18세기 초 종교적 박해를 받고 있던 독일 프로테스탄트들은 펜실베니아 퀘이커 교도들의 종교적 관용 정책에 고무되어서 펜실베니아로 이주를 시작 곧이어 버거운 독일의 경제적 현실에 신음하던 수많은 독일 농민들이 아메리카로 이주. 토지와 다른 재산이 있는 자들은 그것들을 팔아서 이주비를 충당할 수 있었으나 그렇지 못한 상당수 독일인들은 무임 도항이주자로서 대서양을 건넜음.


이들은 일종의 계약 하인으로서 아메리카에서 일정기간 노동을 약속 1776년까지 거의 25만 명 정도의 독일인들이 펜실베니아를 비롯해서 뉴저지, 서부 메릴랜드, 캐롤라이나, 조지아, 뉴욕의 북쪽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었음. 독일인들은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들보다 훨씬 독립적인 생활을 선호하였던 반면, 독일인들은 자립자족형의 중소형 자작 농업에 종사. 이것은 이들이 독일에서 익숙해 있던 농업 형태였기 때문. 그래서 이들은 자연히 영국계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을 피해서 한적한 전원 지역에 정착하였고, 우수한 농업 기술과 아메리카의 비옥한 토양, 그리고 정치적 안정과 종교적 관용 덕분에 빠른 시간에 아메리카에 정착에 성공,게다가 스코틀랜드인 들은 영국인들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기에 영국인들과 쉽게 융화할 수 있었으나 독일인들은 언어가 달라서 그들 나름대로의 독립된 사회를 형성하지 않을 수 없었음.


이것은 언어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전통이기도 했다. 또 이들은 유럽에서 국가라는 근대 형태의 정치적 제도보다는 수 백개의 공국형태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에 적은 인구로 독립된 사회를 형성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음. 물론 영국인의 텃세와 수세기 동안의 정치적 환란에 찌들은 그들이 다른 민족과 융화하기보다는 자기들만의 독립된 생활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것. 이렇듯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는 서로 다른 13개국가로 나누어져 있었던 것. 이 국가들은 영국의 식민지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식민지들은 유럽의 13개 국가가 그대로 아메리카에 이전한 것이나 같았으며, 민족적 정체성이 그대로 유지. 종교적 성향 역시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종교적 열망이 더욱 고조된 곳이 많았다. 메사추세츠의 청교도들이 그랬고 펜실베니아의 퀘이커교도들이 그랬으며 중부 식민지에 산재해 있던 스코틀랜드 장로교교도들과 독일의 프로테스탄트들이 그랬다.


미국은 시작부터 분명 다문화(multicultural society)였다. 거기서는 문화적 융합이라는 필요성도 없었고 그런 강요도 없었음 그러나 1776년에 이르러서는 이들 사이에 어느 정도의 융합이 이루어졌고 점차 유럽의 전통을 뒤로 하고 미국인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물론 독립전쟁은 명확하게 통합된 근본을 뿌리째 뽑으려는 시도, 인디언 사회를 참담하게 뒤흔들어 놓고 말았던 도스 법은 결국 1930년대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개혁의 일환으로 폐지. 앵글로계 미국을 모델로 한 도가니 개념은 혁신주의시대에는 분명 호소력이 있었고,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 미국 문화 도가니의 주성분이 되리라는 확신이 기존 미국인들에게 설득력이 있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새 이민자들은 이러한 도가니 개념이 이민 유화 정책으로 이어지리라고 믿었기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음.


도가니 이론은, 그것은 다분히 유럽의 새 이민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지 다른 유색인종 까지 겨냥한 것은 아니라는 것. 흑인, 인디언, 아시아계,그리고 히스패닉계는 도가니 담론의 일차적인 관심사에서 제외, 20세기 초 문화융화주의는 미국의 정체성을 놓고 벌어진 백인들 사이의 문화 씨름이었다. 도가니 이론은 인기가 높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환영 받는 것은 아니었음. 지식인들 중에 그러한 도가니 개념에 의문을 품은 사람이 있었고, 도가니 문화 융화보다는 문화적 다원(pluralism)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호레이스 칼렌 이다. 그는 1915년 (민주주의 대 도가니 democracy versus the melting pot)라는 일련의 논문들을 발표하고 1924년에 이를 묶어 단행본으로 출간, 칼렌은 도가니라는 개념을 동원해서 강제적으로 문화적 융화를 시도하는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에 상반되는 것임을 지적.


이민자들이 그들의 문화적 유산을 포기하고 당시 미국의 지배적인 문화에 융화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미국의 건국정신에 어긋난다는 것 .그 당시 칼렌이 주장한 문화적 다원주의는 주목을 받지 못함, 혁신주의 시대에는 도가니 이론이 지배적, 그러나 나중에, 좀더 정확하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는 재조명 받게 되며 도가니 이론에 대항하는 주요한 담론의 축이 됨. 도가니 이론으로 상징하는 문화 융화주의는 그 주체가 누구이든 간에 새 이민자의 문화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그 의미가 크다. 19세기 말, 반 이민 정서에 견주어 볼 때 분명 진일보한 것, 그것이 혁신주의 정신의 가장 큰 시대적 공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정신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이었다. 전쟁은 혁신 주의뿐 만 아니라 도가니대 다원주의 논쟁의 싹마저도 잘라 버리고 말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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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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