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자가 묵주기도에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기

 

 

 

 

 

 

거의 3주일 동안 제가,이 자료를 만들기 전에,반드시 해결할 의문 한가지가 있었으니! 그 가장 큰 화두란, 바로  나주성모동산에 빠져든 광신자들의 묵주기도와 참신앙인으로서의 묵주기도의 차이가 무엇인가? 였습니다.결국 어제에서야,이 글,교황 요한바오로2세의, 이 묵주기도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내용을 다시 찬찬히 읽으면서 묵상하다가 발견했네요.

 

영혼영역의 활성화에서 그 차이가 나타납니다!!!

 

참신앙인들의 묵주기도는 내 영혼의 문을 활짝 열어서 그리스도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거룩한 시간입니다.그리고 이 경지(성령이 내안에서 활동하는 걸 느끼는 경지)에 이르는 과정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제 경우에는 거의 2년여의 수련기간이 필요했습니다.지금은 제 묵주기도는 완전히 주님께 내 몸을 내어주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반면에,

 

나주성모동산의 광신자들의 묵주기도는 내 몸을 악령에게 내어주는 짓으로,건성으로 성모송만 주절이주절이 읊어대며 세상살이의 유혹에 자신을 완전히 내맏겨 버리는,영혼이 없는 송장의 기도입니다.하나하나 묵주기도의 신비에 마음을 모아서 참진리를 깨우쳐나가지 않는 모든 묵주기도는 바로 산송장의 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처음엔,54일기도(9일기도)로 바쳐라 !

 

 

-청원기도(27일) :환희,빛,고통,영광의 신비 순서로 날마다 드리며 마지막 27일째에 고통과 영광을 함께 드리며,지향기도를 처음 묵주기도 시작부분에서 사도신경을 바치기 전에 드립니다. 예를 들자면,이번에 도전하는 시험에 최선의 노력을 할 수 있는 지헤와 힘을 저에게 주십시요.....

 

 

-감사기도(27일) :28일째부터 감사기도로 다시,환희,빛,고통,영광의 신비 순서로 날마다 드리며 마지막 54일째에는 고통과 영광의 신비를 함께 드리게 됩니다.......이 54일기도에는 반드시,그 응답이 옵니다.청원이 들어졌다는 확신 아래서 감사기도를 27일 동안(28일째부터 54일 마지막 날) 포기하지 마시고 바치십시요.만약 기도로 청원한 그 시험에 불합격이라면? 어쩌면 그 길로 들어가지말라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그 길이 들어가서는 안되는 길인지 아닌지는 한 십년 정도 세월이 흐른 후에야,깨닫게 됩니다.내가 간절히 가고싶었던 그 길이 바로 지옥으로 들어가는 길이엇음을 느끼며, 등에서 식은 땀이 날 정도입니다!!!

 

그런 식으로 응답이 옵니다!!

 

 

반드시 처음엔,아침에 일어나자마자,조상들이 백일치성을 드렸던 자세로 바쳐라!!!

 

 

- 이게 마지막 나의 희망이다!!라는 절박함이 필요합니다.

 

인생사의 거듭되는 실패와 절망 속에서,추락할대로 추락하다가,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함,하늘을 감동시키는 정성이 아니라면 결코 묵주기도의 맛을 들이지 못합니다.영성훈련에 좋다니까,한번 해보자...!!!!!!!!! 절대로 성공하지 못합니다.반신반의한 자세로, 대충 얼렁뚱땅 묵주기도한다고 헤매다가 결국 포기합니다.절박한 상태 아니면 졸다가 말다가 재미도없고,중단하는 기도가 바로 묵주기도입니다 

 

- 아침 일찍 일어나서 54일 동안 직장출근할 준비 모두 마치고,편안하고 안정된 심리상태를 먼저 만든 이후 기도에 들어가십시요.빨리빨리 해치우는 자세는 절대로 성공하지 못합니다.내 인생의 기로입니다.이거 아니면 나는 끝장이다...당연히 54일 동안은 이 묵주기도에 내 인생을 올인해야만 합니다.시간에 쫒기는 상태로는 하지마세요.하루이틀 빼먹었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첫 날로 잡아서 다시 시도하세요.그런 자세라야만 성공합니다!

 

 

반드시 처음엔,무념무상하려고 노력하지 마라!!!!!

 

 

-묵주기도를 시도할 때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이 영적인 도전(demonic attack)입니다.

-잠자리가 뒤숭숭해집니다.악몽이 거듭됩니다.

-묵주기도가 무가치하게 느껴지며 시간낭비처럼 느껴집니다.

-시도때도없이 혼돈에 빠집니다(가령,묵주기도하는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짐)

-곧잘 잠에 골아 떨어지곤 합니다.

-위의 모든 사항이 주기적으로 일어납니다.결국 이 과정을 넘기지 못하면 묵주기도생활이 불가능해집니다!!

 

그것이 현재,묵주기도를 거부하는사람들, 거의 모든 천주교신자들의 상황입니다!!!!

 

 

파티마의 예언은 성모님과 교황님을 탕녀라고 공격하며,묵주기도를 혐오하도록 만들고,전례를 파괴하는 교회 밖의 이단들 뿐 아니라,또한 카올릭교회 안에까지 스며든,한상봉같은 복음주의자들,오류-이단교리를 퍼뜨리는 성직자들에 대한 경고이기도하다!!!!바로 그런 내용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영어듣기가 가능한 분들은 반드시 들어야할 내용입니다. 클릭 ☞ 아래 비디오보기...

 

Fatima Your Last Chance 2012:The Third Secret Contents Regarding th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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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 연관 포스팅 클릭 ☞ 제2장,묵주기도의 메카니즘(그리스도의 신비 - 성모님의 신비)요한바오로2세

 

 

 

 

제 1 장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태양처럼 빛나는 얼굴

 

9.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마태 17,2). 세 사도 곧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구세주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복음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변모 장면은 그리스도 관상의 한 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켜, 그분 인성의 일상사와 고통스런 여정 안에서 그분의 신비를 깨닫고, 성부의 오른편에 앉으신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영원히 드러난 신적인 광채를 알아보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제자의 임무이며 따라서 우리 각자의 임무입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삼위일체의 생명의 신비를 받아들이도록 우리 자신을 열어, 늘 새롭게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하고 성령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바오로 성인의 말씀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2코린 3,18).

 

 

관상의 모범이신 성모님

 

10. 그리스도 관상에서 성모님께서는 그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탁월한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성자의 얼굴은 특별히 성모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모님의 태중에서 자라시면서 인간적으로 그분과 닮은 외모를 물려받으셨는데, 이 닮음은 한층 더 돈독한 영적인 결합도 이끌어 냅니다. 그 누구도 성모님만큼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았던 사람은 결코 없습니다. 성모님의 마음의 눈은 주님의 탄생 예고를 받아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을 때에 이미 예수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몇 달 뒤에 성모님께서는 그분의 현존을 느끼시고 그분의 모습을 마음에 그리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낳으시고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시며”(루카 2,7) 성모님께서는 당신 육신의 눈으로 아드님의 얼굴을 바라보실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언제나 흠숭과 경탄에 가득 찬 성모님의 눈길은 예수님을 떠난 적이 결코 없습니다. 때로는, 잃어버린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시고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루카 2,48)라고 하셨을 때처럼 물어보는 눈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처럼(요한 2,5 참조) 예수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고 더욱이 드러나지 않는 감정을 깨닫고 그 뜻을 내다볼 수 있는 꿰뚫어 보는 눈길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때 그 눈길은 특히 십자가 아래에서처럼 슬픔의 눈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어느 모로 산고를 겪는 어머니의 눈길이었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외아드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셨을 뿐만 아니라, 아드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를 진정한 새 아들로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요한 19,26-27 참조). 그리고 부활절 새벽에는 부활의 기쁨에 빛나는 눈길이었을 것이고, 마침내 오순절에는 성령을 넘치도록 받아 불타는 눈길이었을 것입니다(사도 1,14 참조).

 

 

성모님의 기억

 

11. 성모님께서는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사시며, 그분의 말씀은 무엇이든 소중히 간직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51 참조). 성모님의 마음에 새겨진 예수님의 기억은 모든 일에서 언제나 성모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당신 아드님 곁에서 보내신 삶의 여러 순간들을 묵상하게 하였습니다. 그 기억들은 어느 모로 성모님께서 지상에 사시는 동안 몸소 끊임없이 바치셨던 ‘묵주기도’를 이루었습니다.

 

지금도 천상 예루살렘의 기쁜 노래들 가운데 성모님께서 감사와 찬미를 드리시는 연유는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그 연유들 때문에 성모님께서는 지금도 순례하는 교회에 어머니로서 관심을 가지시며, 교회 안에서 복음 선포자로서 당신의 선포 여정을 계속해 나가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신자들에게 당신 아드님의 ‘신비’를 끊임없이 보여 주시며, 그 신비의 관상으로 그 모든 구원의 힘이 발휘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성모님의 기억과 또 그 눈길과 일치하게 됩니다.

 

 

관상 기도인 묵주기도

 

12. 바로 성모님의 체험에서 시작된 묵주기도는 더 없이 훌륭한 관상 기도입니다. 이러한 관상의 차원이 없으면 묵주기도는 그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이를 분명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관상이 없는 묵주기도는 영혼이 없는 육신과 같아져 기도문만을 반복하는 위험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마태 6,7)고 하신 예수님의 권고를 거스르게 될 것입니다. 묵주기도는 본질상 고요한 운율과 생각을 할 수 있는 느릿한 속도로 바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께 가장 가까이 계셨던 성모님의 마음과 눈길로 기도하는 사람이 주님 생애의 신비를 더 쉽게 묵상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그 신비의 헤아릴 길 없는 부요가 드러나게 됩니다.”14)

묵주기도가 참으로 그리스도 중심의 관상 기도라는 그 고유한 본질을 더 잘 드러내 주는 몇몇 측면들을 밝히자면, 교황 바오로 6세의 이 드높은 생각을 잠시 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기억하기

 

13. 성모님의 관상은 무엇보다도 먼저 기억이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기억(zakar)이라는 말을 성서적 의미에서 이해하여야 합니다. 기억은 하느님께서 구원 역사 안에서 이루신 일들을 현존하게 합니다. 성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정점에 이르는 구원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사건들은 ‘어제’의 일만이 아니라 구원의 ‘오늘’입니다. 이러한 시간의 충만은 특히 거룩한 전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께서 수세기 전에 이룩하신 일들은 그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 은총의 선물로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러한 사건들에 대한 다른 모든 신앙적 접근에도 어느 정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신앙과 사랑으로 그 사건들에 대한 ‘기억’을 경축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삶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로 우리에게 얻어 주신 은총에 자신을 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확인하였듯이, 그리스도의 사제 직무의 수행이며 공적 예배 행위인 거룩한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 나오는 원천”15)이라는 것을 거듭 확인하는 한편, 영성 생활은 “오로지 거룩한 전례의 참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그리스도인은 공동으로 기도하도록 부름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또한 자기 골방에 들어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여야 하며(마태 6,6 참조), 더욱이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 끊임없이 기도하여야 한다(1테살 5,17 참조).”16)는 것 또한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 고유한 특성으로 묵주기도는 “끊임없이” 바치는 수많은 기도의 정점에 자리합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행위인 전례가 모든 것에 앞서 구원을 가져다 주는 행위라면,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묵주기도는 구원에 도움이 되는 관상입니다. 묵주기도는 구세주의 삶의 신비들에 잠겨, 그분께서 하신 일과 전례가 재현하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여 우리 삶에 동화시켜 줍니다.

 

 

성모님께 그리스도를 배우기

 

14.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뛰어난 스승이시며, 계시하시는 분이시자 계시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분께서 가르치신 것을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그분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면에서 성모님보다 더 좋은 스승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느님 편에서는,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충만한 진리로 이끄시는 내적 스승이십니다(요한 14,26; 15,26; 16,13 참조). 그러나 피조물 가운데에서 성모님보다 그리스도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으며, 그리스도의 신비를 깊이 깨닫도록 우리를 더 잘 이끌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첫 번째 기적을 이루신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라고 하인들에게 이르실 때에 분명히 스승의 모습으로 드러나십니다(요한 2,5 참조). 또한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 제자들과 함께 성령을 기다리시며 최초의 사도 파견에서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셨을 때에도 스승의 역할을 하셨다고 마음으로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묵주기도 한 단 한 단을 성모님과 함께 건너가는 것은 성모님의 “학교”에서 그리스도를 읽고 그분의 신비를 깨닫고 그분의 복음을 배우는 것과 거의 같습니다.

 

성모님께서 친히 학교를 여시고 우리에게 성령의 선물을 풍부히 얻어 주시며 그 누구에게도 비길 수 없는 스승으로서 “신앙의 나그넷길”17)에서 모범으로 가르치신다고 여길 때에, 이 성모님의 학교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성자의 신비를 하나하나 바라보며, 당신께서 주님 탄생 예고 때 하신 것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는 질문을 하고 언제나 신앙의 순종으로 대답을 하라고 권유하십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닮기

 

15. 그리스도인 영성은 자기 스승과 더욱 완전히 동화되어야 하는 제자의 본분을 그 고유한 본질적 특성으로 삼고 있습니다(로마 8,29; 필리 3,10.12 참조). 세례 때에 넘치게 받은 성령으로 신자들은 그리스도이신 포도나무에 가지처럼 접붙여지며(요한 15,5 참조)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가 됩니다(1코린 12,12; 로마 12,5 참조). 그러나 이러한 처음의 결합에는 언제나 그분을 닮아 가는 동화의 여정이 응답을 하여야 합니다. 곧 제자의 삶이 갈수록 더욱더 그리스도의 “논리”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 사도의 말씀대로 반드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어야”(로마 13,14; 갈라 3,27 참조) 합니다.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얼굴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묵주기도의 영적 여정에서, 그리스도께 동화되려는 이 목표는 이른바 “우정”의 길을 통하여 추구됩니다. 이 길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삶으로 들어가, 그분의 감각으로 “숨쉬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바르톨로 롱고 복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마치 두 친구가 자주 함께 만나면 흔히 그 습관이 서로 동화되듯이, 참으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친밀하게 살고 동정녀와 함께 묵주기도의 신비들을 묵상하며 영성체를 통하여 하나의 삶을 이룬다면, 비천한 우리도 그분들을 닮을 수 있고, 그 탁월한 모범으로 겸허하고 가난하며 드러나지 않고 인내하는 완덕의 삶을 배울 수 있습니다.”18)

묵주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께 동화되어 가는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맨 먼저 복되신 동정 성모님의 보호에 우리 자신을 의탁합니다.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참으로 “가장 뛰어나고 유일무이한 지체”19)로서 교회에 속하시지만 또한 동시에 “교회의 어머니”이십니다. 성모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신비체에 끊임없이 자녀들을 “낳아” 주시기에 그렇습니다. 이는 자녀들에게 성령께서 끊임없이 내리시기를 간청하는 당신의 기도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교회 모성의 완전한 표상이십니다.

 

묵주기도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나자렛의 가정에서 그리스도의 인간적 성장을 보살피시느라 여념이 없으신 성모님 곁으로 우리를 데려다 줍니다. 이렇게 하여 성모님께서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형성”되실(갈라 4,19 참조) 때까지 예수님께 기울였던 것과 같은 관심으로 이제 우리를 가르치시고 교육하십니다. 성모님의 이러한 역할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역할에 근거를 두고 있고 그 역할에 철저히 종속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를 절대로 흐리게 하거나 감소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힘을 보여 줍니다.”20)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밝힌 이 훌륭한 원칙을 저도 제 자신의 삶에서 강렬하게 체험하였고 이는 “모두 님의 것”(Totus Tuus)이라는 말씀을 제 주교 문장의 바탕으로 삼은 까닭이었습니다.21) 물론 이 말씀은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 드 몽포르 성인의 가르침에 따른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께 동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성모님께서 하시는 역할을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하였습니다. “우리의 모든 완덕은 예수 그리스도께 동화되고 결합되며 봉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완전한 형태의 신심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 동화되고 결합되어 우리를 그분께 더욱 완전하게 봉헌하는 것입니다. 마리아께서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으신 분이므로, 모든 신심 가운데에서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께 대한 신심은 우리 영혼을 우리 주님께 바쳐 주님과 동화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모님께 영혼을 봉헌하면 할수록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께 영혼을 봉헌하는 것입니다.”22) 예수님과 성모님의 생애가 묵주기도에서만큼 깊이 결합되어 있는 곳도 없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만 사십니다.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께 기도하기

 

16.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 하고 말씀하시며 확신을 가지고 끈기 있게 하느님께 매달리라고 권고하셨습니다. 이러한 기도의 힘의 근원은 하느님 아버지의 선하심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중개이자(1요한 2,1 참조) 하느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대신해서 간구해 주시는”(로마 8,26-27 참조) 성령의 활동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며”(로마 8,26 참조), 때로는 “잘못 구하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불러일으키시는 기도를 뒷받침하시며 당신의 자애로운 전구를 통하여 개입하십니다. “성모님의 기도는 교회의 기도를 떠받쳐 줍니다.”23)유일한 중개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기도의 길이시라면, 그리스도의 가장 뚜렷한 모상이신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 주십니다. “성모님께서 성령의 활동에 유일하게 협력하신 사실을 토대로,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신비에서 드러난 그분의 위격에 초점을 맞춰 거룩하신 하느님의 어머니께 바치는 기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24) 복음 말씀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께서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라고 하시며 다른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알려 주시는 장면에서 성모님의 전구의 힘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묵주기도는 묵상이며 간청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께 꾸준히 기도하는 것은 어머니의 전구가 당신 아드님의 마음에서 모든 것을 얻어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바르톨로 롱고 복자가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Supplicatio ad Virginem)에서 사용한 표현대로, 물론 이 말은 올바르게 이해하여야 할 필요가 있지만, 성모님께서는 “은총으로 전능하신” 분이십니다.25) 이는 복음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인 백성의 경험 안에서 더욱 확고해진 확신입니다. 뛰어난 시인 단테는 베르나르도 성인의 말씀을 빌려 이를 훌륭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너무나 위대하고 힘있는 여인이여, 누구나 은총을 바라지만 당신께 달아들지 않는 자는 날개 없이 날기를 바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26) 우리가 묵주기도를 하면서 성령의 여인(루카 1,35 참조) 마리아께 간청을 드릴 때에, 성모님께서는 당신께 은총을 가득히 주셨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청하시며, 또 당신 몸에서 태어나신 아드님 앞에서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여 주십니다.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기

 

17. 묵주기도는 또한 선포와 탐구의 길로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여러 차원의 그리스도인 체험에 끊임없이 제시합니다. 그 특징은 기도와 관상으로서, 그리스도의 마음에 그리스도인 자신을 결합시켜 줍니다. 묵주기도는, 특히 본당과 순례지에서 이루어지는 공동 거행에서, 효과적인 묵상에 필요한 모든 요소와 결합될 때, 교리교육의 중요한 기회가 됩니다. 사목자들은 이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묵주기도의 성모님께서도 이런 방식으로 그리스도 선포 활동을 하십니다. 묵주기도의 역사는 특히 이단의 확산으로 교회가 어려움에 빠졌던 시기에 도미니코회 수도자들이 묵주기도를 어떻게 이용하였는지를 보여 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를 앞서 간 사람들의 신앙과 똑같은 신앙으로 우리도 다시 한 번 묵주기도에 의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묵주기도는 그 모든 힘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으며, 지금도 훌륭한 모든 복음 전파자들이 활용해 온 사목 도구로서 커다란 힘과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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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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