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추구자가 살아 가는 법


 - 내가 속한 사회,나를 사회화시킨 사회를 넘어서 그 사회의 전체를 바라 보기

- 내가 진리라고 배웠던 그것들이 과연 진실인가? 나를 키우고 가르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나에게 무얼 따라 살라고 가르쳤는가? 그들은 지금 잘 살고 있는가?

-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를 키웠고 가르친 사람들을 좋아 하는가? 혐오하는가? 증오하는가?

-  나는 행복한가?  나는 스스로 선택한 나만의 취향이 있는가? 

- 나는 지금 무얼 추구하는 중인지,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는가? 

- 없다면? .......나는 지금 무얼해야 하는가?

- 길을 멈추고 자기가 걷는 길을 점검하는 태도..........

- 돈이 있다면, 멀리 있는 성지순례계획을 잡는다. 혼자 다닌다......


.내가 직접 가봤던 곳으로 독자들께 추천하고 싶은 곳, 한국 천주교회에서 추천하는 서울근교 성지,전주지역 성지,베티성지(여긴 아예 숙소를 잡아서, 며칠 동안 살 수 있는 기간으로, 꼭 또 가고 싶다.) 


우연하게 시작된 2015년 10월말쯤의 성지순례사진들,곧 순례자의 노트란 카테고리에서 자세하게 기록할 예정이네요,새로운 한 해 계획과 자기 성찰 시간으로 삼아서,떠나보는 전주여행은 어떠세요.관심있는 분이라면 여기 클릭☞ Catholic in Korea 문명의 충돌 - 전주향교(동헌)에서 보이는 치명자산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사람은 지금 현재 60대에 들어서는 여성이며 산전수전을 다 겪고서 인생 여정의 끝에 서있네요.맨처음엔 이 블로깅의 목적이 어린 아들에게 고백하는 엄마의 인생이야기,처음 블로깅 소제목들이,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그 당시 아들은 군대생활 중이었고,그 아들이 이 글들을 읽는지 어쩌는지 확인할 용기도 없었고,단 하나의 희망이라면,이 모든 기록들이 하느님 뜻이라면 반드시 그 아이가 내 글들을 읽겠거니 믿었기에 부끄럽지만 지독스럽게 감추고싶었던 내 실패한 삶의 이야기를 기록해왔네요...(테씨의 신앙성찰이란 블로그로 따로 2년 동안 기록)


그래서,이 블로그의 글들이,이런 저런 단계로 약 6년 이상을 이어져 왔고.....,


평소에 어려서부터 내 취미는 오로지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무위도식하는 인생을 꿈꾸는 여자아이였답니다.날마다 농사꾼인 할머니를 따라 다니며 일하는 아이로 살았고,할머니로부터 자신의 수많은 인생역정의 인간승리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았네요.그런 함머니를 자기자신처럼 사랑하며 험난한 인생길을 동반해 주었던 나의 할아버지,그 분은 조선시대의 유학자답게,인간이 마땅하게 걸어야할 길,인간이라면 어떤 인생을 살아야하는지 손주들에게 품위있는 남자의 삶에 관하여,몸소 가르쳐주시고...


딸이란 이유로 다행히(?) 할아버지에게 붙잡혀 한문공부를 하지 않아도 됐던 어린 나,시간만 나면 들판에 엎드려서 몇시간이건 하늘과 바람과 풍경들이 나에게 다가오는 소리에 취해서 빈둥거리는 시간을 좋아했었고,눈이오건 비가오건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서 성경이야기 듣기를 좋아했고,학교도서관에서 빌려 온 안델센동화,이솝이야기를 읽었고,그런 이야기책 속 주인공이 되는 시간,공상하는시간을 즐겼네요.그렇게,끝없이 공상에 빠져서 공주처럼 생활하는 판타지를 꿈꾸기도 했었고....늘 자유롭게 살아보는 것,아무 것도 안하고 빈둥거리며 노는 인생을 꿈구면서도.....


문득 들었던 생각....??? 그런데...


그렇게 온통 사치스럽게 시녀들에게 둘러 쌓여서 아무것도 안하며 시중을 받기만 한다면,멋진 왕자가 나를 사랑해주고 인생이 한없이 순탄해서,그냥 잘 먹고 잘 살았더란다....라는 동화처럼,결혼하고,그리고? 공상에 공상을 거듭하다가 문득 들었던 생각....그렇게 나에게 아무일도 안 일어난다면, 그런 인생은 정말 재미없을 것 같다...


아!!  지루한 인생, 돈만 많으면 뭘해,결국 돈 없는 아줌마나,돈이 많은 아줌마나,,아줌마는 아줌마일 뿐,그런 멋없는 아줌마 인생.....아 지루하고 싫어!!!....난 반드시 이 촌구석을 벗어나서 멀리 멀리 떠나보고 모험을 할거야. 저 소나무가 여기서 500년쯤 살았더라도,그렇게 오래 살아서 내가 본 적이 없는 옛사람들을 저기서 지켜봤더라도,그럼 뭘해, 나무가 보지 못하는 더 먼 세상을 나무는 지금도...그건 모르잖아....


난 이 세상 끄~읏까지 가 볼거야...

그래서 모두 볼거야...무엇이 있는지...그 쯤은 돼야 살아 볼만하지...

살림만 하거나 사랑만 받거나....그게 무슨 재미? 그게 무슨 의미?....


난 아주 많이 파란만장하고 힘들고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는 그런 삶이 더 좋아.....난 꼭 그렇게 될거야.반드시 비운을 넘어서 일어서는 사람,역경을 견뎌내는 사람, 지루한 인생이 아닌 흥미로운 이야기거리가 많은 사람으로 살거야....앞으로 나는 어디에 있을까? 정말 궁굼해!!! 


그런 공상이 이제는 현실이 되어서 내 앞에 있네요...앞으로 그렇게 만났던 땅,미국이야기를 할까 합니다.새 해엔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자기 앞에 다가오는 어두운 삶의 그림자에 무서워하지말고 아무것도 안 일어나는 그러한 지루함보다 이 역경을 이겨나가는 내 삶을 살거라는 다짐으로 한 해를 열어가시라고 새 해 인사로 이 글을 대문에 걸어 두네요...


2017년부터는,모든 불신과 패배와 두려움을 버리고,어둠을 이겨내는 빛의 자식,

불신과 미신을 버리고 믿음의 사람들이 꼭 되시기를 빕니다!!!

click here 어떻게 살았는가? 무엇을 남겼는가? 무엇을 얻었는가?  (3)


미국역사 제대로 공부해보자


1,든 면에서 북미 지역의 인디언 사회는 그들이 살고 있던 땅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대부분의 인디언 부족들, 특히 숲이 울창한 동부 지역과 중서부 지역에 살고 있던 부족들은 사냥이나 수렵 채집을 하는 한편 옥수수와 그 밖의 다른 농작물들을 경작하여 생활했다. 인디언들은 근본적으로 씨족 중심적이었으며 공동체 생활을 영위했다. 그리고 당시 인디언 아이들에게는 오늘날 유럽의 어린이들보다 오히려 더 많은 자유가 주어졌으며 여러 가지 행동들이 너그럽게 받아들여졌다. 다양한 인디언 부족들 사이에는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2, 유럽인으로서 북미 대륙에 최초로 도착한 사람들은 약 1000년경에 레이프 에릭슨이 이끄는 가운데 도착한 아일랜드계 바이킹들이었다. 1492년 드디어 이탈리아의 탐험가인 크리스토퍼 콜롬버스는 스페인 왕의 명령에 따라 유럽에서 서쪽으로 항해를 계속 한 끝에 현재의 바하마 군도 중 한 섬에 상륙하게 되었다. 사실 콜롬버스는 죽을 때까지 미 대륙의 본토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미 대륙에 대한 최초의 탐험은 콜롬버스의 도움을 받아 마련되었던 스페인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스페인의 탐험가들은 중남미 지역에 광활한 대지를 확보했다. 그 후 1513년에는 후안 폰세 데 리온이 이끄는 일단의 스페인 사람들이 오늘날의 세인트 어거스틴 인근의 플로리다 해안에 상륙했다.

한편 스페인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밀고 올라가는 동안, 오늘날 미국의 북부 지역은 지오바니 다 베라자노와 같은 탐험가들의 탐험에 의하여 서서히 드러나게 되었다. 프랑스로 가기 위하여 항해에 나섰던 플로렌스 출신의 베라자노는 1524년에 오늘날의 노스 캐롤라이나 지역에 상륙했다. 그는 그 후 대서양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항해하여 오늘날의 뉴욕 항에 도착했다.


3, 식민지 시대 - 1600년대 초에는 유럽으로부터 북미지역으로 수 많은 이민자들이 몰려왔다. 영국에서 온 이주민들은 종종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에서 이민을 주선한 민간 업자들의 지원을 받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영국인들은 1607년에 최초로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 후 뉴 잉글랜드, 중부 식민지 그리고 남부 식민지등에 초기 이주민들이 점차 정착하게 되었다. 1620년 영국을 떠나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도착한 청교도(Pilgrims)들은 매사추세츠주에 플리머스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 후 1681년 돈 많은 퀘이커 교도였던 윌리엄 펜은 광대한 땅을 불하 받았는데, 이 땅이 오늘날의 펜실베니아이다. 펜은 사람들을 펜실베니아에 정착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이민자들을 모집했다. 그 중에는 종교적 박해를 피하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퀘이커 교도, 메노파 교도, 아미시 교도, 모라비아 교도, 침례교도 등이었다. 1683년에는 펜실베니아에 독일 이민자들이 처음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1733년경에는 대서양 연안을 따라 모두 13개의 영국 식민지가 건설되었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정치적 박해를 피하거나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아니면 고국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새로운 기회나 모험을 찾아서 자신들이 살던 나라를 떠나 온 사람들이었다. 이민자들은 대부분 영국 출신이었으나, 그 밖에도 네덜란드인, 스웨덴인, 독일인 등이 있었으며, 소수이기는 하지만 프랑스의 위그노와 스페인인, 이탈리아인, 포르투갈인 등이 있었다. 대부분의 식민지 주민은 미국으로 이주하는 비용을 댈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 중 일부의 경우에는 일정한 기간 동안 계약에 따라 노동을 하기로 약속하고 연한(年限)계약 노동자로서 미국에 이주해 왔다. 그 밖의 다른 경우에는 식민지 이주 대행 업체에서 교통비와 관리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 1619년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들이 처음으로 버지니아에 도착했다. 아프리카 노예들도 처음에는 연한 계약 노동자로 일하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1660년대에 이르자 아프리카 노예들은 족쇄를 채운 채 강제로 끌려와서 평생 노예 생활을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뉴 잉글랜드 지역과 중부 지역의 식민지들의 경제 및 사회적 구조는 남부 정착 지역의 경제 및 사회적 구조와는 달랐다. 뉴 잉글랜드 지역은 일반적으로 돌이 많고 척박한 지역일 뿐만 아니라 겨울이 상대적으로 길어, 농사를 지어 생활하기가 매우 힘든 지역이었다. 따라서, 뉴 잉글랜드의 식민지 주민들은 다른 생계 수단을 찾게 되었다. 그들은 수력을 활용하여 제분소나 제재소를 세웠다. 초기 정착민 중 많은 사람들이 항구 부근의 마을이나 도시에 살게 되면서, 많은 뉴 잉글랜드 식민지 주민들이 무역이나 사업을 하게 되었다. 이제 바다는 큰 부를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이다.

한편, 중부 지역의 식민지들은 뉴 잉글랜드보다 더 많은 나라의 이주민들이 건너오면서 훨씬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18세기 말 경에 이르자 필라델피아의 인구는 30,000 여 명에 달하게 되었다. 그들은 언어와 종교적 배경이 서로 다르고 매우 다양한 산업 활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필라델피아의 경우는 퀘이커 교도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반면, 펜실베니아주의 다른 지역들은 다른 종파들 역시 상당한 세력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독일인들은 식민지에서 가장 뛰어난 영농 기술을 발휘했다. 그 밖에도 역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직물, 제화, 가구제작 및 기타 공예품 제작 등의 가내 수공업이었다. 반면 스코틀랜드 인들과 아일랜드 인들은 시골 지역에 정착하여 농지를 개간하고 수렵활동이나 자급 자족의 농업을 통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남부의 정착 지역들은 거의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다.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에서는 농장의 노동력을 흑인 노예들에 의존하고 있던 대농장주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휘두르고 가장 좋은 농토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보다 작은 농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자작농들은 민중 의회(popular assemblies)에 의석을 차지하고 공직에 진출하기도 했다. 한편,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찰스톤은 남부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항구 및 교역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버지니아주는 담배 재배라는 단일 품목에 집중하고 있던 반면,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와 노스 캐롤라이나주는 쌀과 염료(indigo)를 수출하기도 했다.

18세기 초에 이르자, 각 주의 식민지 의회들은 두 가지 중요한 권한을 확보하게 되었다. 한 가지는 세금과 지출에 관하여 표결을 할 수 있는 권한이었으며, 나머지 한 가지는 단순히 주지사의 제안에 따라 조치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의회 스스로 법안을 제안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식민지 의회들은 이러한 권한들을 사용하여 귀족 출신의 주지사들의 권력을 견제하고 자신들의 권한과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시간이 흐르면서, 식민지 행정의 중심은 점차 런던으로부터 각 주의 주도로 옮겨갔다.

(1770년대부터1800년대까지)

일부에서는 미국 독립 혁명의 역사가 1775년 역사적인 첫 발의 총성이 울리기 훨씬 전부터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실제 영국과 미국이 대결 국면으로 치달은 것은 청교도들이 버지니아 주의 제임스타운에 최초로 정착하고 나서 1백 5십년이 지난 후인 1763년경이었다. 1763년에 7년 전쟁과 프랑스-인디언 전쟁이 막을 내리게 되자 영국은 캐나다와 미시시피 주 동쪽의 북미 대륙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한편 1763년 당시 그 동안 상당한 독립을 누리고 있던 식민지들은 이제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게 되었다. 그 당시 미국 식민지들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문화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상당한 자치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던 대영 제국을 운영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했던 영국은 새로운 재정 정책을 취하기 시작했다. 식민지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금들은 더욱 강력한 중앙 집권 정책을 통하여 식민지들로부터 충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중앙 집권 정책은 필연적으로 식민지들의 자치권에 타격을 주게 되었다. 그러자 식민지 주민들은 영국 정부가 부과한 설탕 법, 인지세 법, 타운센드 법, 및 강압 법(Coercive Act) 등을 비롯한 새로운 조세 제도와 각종 규제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출한 식민지 의회에서 부과하는 세금만 부담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 영국과 미국 사이의 갈등이 점점 심각해 지자, 영국 국왕 조지3세는 1775년 8월 23일에 식민지들이 반란을 도모하고 있다고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1776년 7월 4일, 대륙 의회(Continental Congress)는 독립선언문을 채택하고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국과 영국 사이의 전쟁은 1783년까지 계속되었다. 결국 양국은 “파리 조약(Treaty of Paris)”이라는 평화 조약을 체결하여, 당시의 13개 식민지(현재의 주)의 독립과 자유 그리고 주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조약에 따라 영국 정부는 이들 13개 식민지들에게 서쪽으로는 미시시피 강, 북쪽으로는 캐나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플로리다까지 걸쳐있는 광대한 영토를 넘겨주게 되었다. 플로리다는 나중에 스페인에게 다시 반환되었다.

독립 전쟁 결과 13개 식민지들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연방"을 구성하게 되었으나 아직 단일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인들은 독립선언문에서 공표한 자신들의 이상을 법적으로 구현하고 각 주의 헌법을 통하여 자신들의 불만 사항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일찍이 1776년 5월 10일, 미 제헌 의회는 13개 식민지들에게 각각 자체적인 정부들을 구성할 것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었다. 그 밖에도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1776년 존 디킨슨이 제안한 "연합규약과 영속적인 연합(Articles of Confederation and Perpetual Union)"이 1777년 11월 대륙 의회에서 채택되었으며, 1781년부터 효력을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연합 규약에 의하여 구성된 정부 구조는 사실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중앙 정부는 관세를 부과하고, 통상 활동을 규제하며 세금을 부과하는 등의 권한을 가지지 못했다. 또한 중앙 정부는 외교 활동에 있어서 전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13개 식민지 중 많은 주 정부들이 자체적으로 외국과 외교 협상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9개 주들은 자체적으로 군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일부 주에서는 해군력까지 보유하고 있을 정도였다.

1787년 5월, 필라델피아에서 헌법의 초안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고 헌법이 통과되면서 세금을 징수하고 외국과의 외교에 전권을 가지며 군대를 유지하고 외국과의 무역이나 각 주 사이의 교역 활동을 관할하는 강력한 연방 정부가 탄생하게 되었다. 연방 정부는 헌법에 따라 각각 서로 독립성을 유지하는 입법, 행정, 사법의 3부로 나뉘게 되었다. 각각의 기관에게 주어진 권한은 나머지 두 개 기관이 가지고 있는 권한들에 의하여 절묘하게 균형을 갖추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기관은 다른 기관들의 권한 남용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게 되어 있었다. 헌법이 채택되고 나서 2년 안에 전체적으로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고 부르는 10개의 수정안들(amendments)이 헌법에 추가되었다.


오조나 부근 창밖 풍경. 만약  I 10에서 이런 풍경이 보이거든...이게 웨스트텍사스구나 생각하면 된다.


루트 66을 달리다  자동차 한 대로 떠난 미대륙 횡단기    http://www.libro.co.kr/Product/BookDetail.libro?goods_id=0100004845888내가 오조나에 오기 전에 앞으로 살아 갈 곳이 어떤 곳인지 궁굼해서 Ozona를 인터넷검색해보니 오조나살인사건....이란 황당한 영화만 검색됐는데 오늘은 검색해보니 내가 올린 자료가 대부분이고 그 외에 이책이 나왔다.


이 책의 저자 :전상우 책소개 글 - 
저자는 지난 2002년 여름 아내와 아들, 딸을 데리고 3년간 계획한 미국 여행을 떠났다. 저자의 가족은 LA공항에서 출발해서 뉴욕에 이르는 장장 35일간, 5500마일의 자동차 미 대륙 횡단여행을 했고, 이 책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35일간 자동차 여행의 일일 보고서이면서 동시에 길 위에서 만나는 미국문화 견문록이다. 출발 전 짐꾸리기부터 자동차 렌트하기, 마일 출지의 도로번호와 숙박지, 가격까지 꼼꼼하게 기록했다. 또한 미국 현지도로에 대해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어 미국 자동차 여행을 준비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루트 66(Route-66)이란? 존 스타인벡이 'The Morther Road'라고 부른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 도로. 총연장 4000km. 동서횡단의 가장 유명하고 역사적인 길이다. 'Historic Route 66', 'The Main Stree of America' 등으로 불린다.


길위에 만들어진 나라 - 미국 - 
미국을 만나는 길, 미국을 이해하는 길. 우리는 뉴욕이나 L.A, 라스베가스 등을 비행기로 날아가서 몇몇 도시를 보고는 미국을 여행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미국은 비행기를 타고 연결되는, 비행기 노선의 화살표로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다. 미국은 광활한 대륙을 사람이 두발로 걸어서 다져놓은 바로 길위에서 탄생한 나라다. 미국의 첫 정착민들은 동부에서 서부로 금을 쫓아, 석탄을 쫓아 혹은 새로운 신천지를 찾아 종횡무진 미 대륙을 헤매다녔다. 그들은 도시 이전에 도로를 개척했고, 그 도로사이에 도시를 건설했다. 그게 바로 미국의 역사다. 그래서 미국을 진정 이해하고 만나는 방법은 미국의 도로를, 길을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왜 미국의 교통 표지판이 그렇게 꼼꼼한지, 왜 미국에서는 자동차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지, 왜 미국인들은 전 세계를 그렇게 들쑤시고 돌아 다니는지 그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그들의 '길의 역사'다.


「루트66을 달리다」는 바로 미국의 도로 여행기다. LA 공항에서 자동차 한 대로 출발하여 US-93, Route-66, US-180, I-35E, US-78, I-77North, Route-39, I-90East, I-395North, Baltimore-Washington Parkway 등의 '도로'를 달려 뉴욕까지 이르는 35일간, 5500mile 대장정의 기록이다. 이들은 길위에서 도시를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문화를 만나고, 대자연을 만난다. 이 글은 문화탐험기이면서 동시에 여행안내서다. 본문 중간중간에 들어있는 <미국의 철저한 도로 안내>, <워싱턴 도로 신호 체계> 등 세세한 현지정보, <캘리포니아의 노다지 열풍>, <미국의 대륙횡단 철도> 등의 역사정보, <후버댐 상식>, <텍사스 박쥐퀴즈> 등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서부 새척시대의 사회상: 악당과 보안관
7월 27일 저녁 엘파소 데이즈 인 247호
7월 28일 일요일 아침 이슬레타와 소코로
7월 28일 일요일 저녁 오조나 트레블로지
7월 29일 월요일 아침 오조나 박물관
7월 29일 월요일 점심 프레드릭스버그
7월 30일 화요일 낮 오스틴 시내 쇼핑몰
미국의 아파트 단지 




Posted by T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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