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명료하게 요약한건 요걸  클릭 해보세요 ☞ Texas History- 산타 안나 이야기 2번째


이걸 읽고나서 다른 자료 궁굼하면 아래 자료 속 들어가면 미국사 속의 <멕시칸워>자료가 많네요.

클릭 ☞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역사 총정리
        the Mexican-American War,
        annexation of Texas
        

The Mexican–American War 멕시코전쟁은 멕시코 정부의 폭정에 시달리던 이민자들이 독립하며 일으킨 텍사스 혁명 에서 비롯된다.텍사스독립을 인정하지 못한다며 소유권을 주장하는  멕시코(싼타안나)와  군대가 없는 민간인들이라서 늘 멕시코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던 텍사스주민들은(알라모살육전 이후로도 멕시코는 계속 텍사스를 공격)  제발 우리를 미국영토로 받아주세요....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미국에선 그 당시 26개의 주(states)가 13(남부측의 주들)대 13(북부측의 주들)으로 나뉘어서 팽팽하게 남북간의 균형이 유지되던 상황이었다.,이 요청은 첨예한 권력간의 균형이라는 역사상 위치로(휘그당의 반발)로 쉽사리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그러다가 우여곡절을 겪고 10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간 후에야,즉 텍사스주민들이 혁명의 싸움을 시작했던 1835년의 알라모전투로 부터 10년이 흘러간 1845년에서야 28번째 주로 텍사스주의 편입이 확정된다.


 

그런데 전술을 제대로 펼줄도 모르고, 상황판단도 제대로 못하는 멕시코가, 이미 미국의 28번째 주로 편입된 텍사스를 예전처럼 가볍게 여기고 공격한다. 이건 바로 미국과 싸우자고 달려든 꼴이었고, 산타안나(클릭 산타 안나는누구?) 처럼 전투의 기본도 모르고 설치는 멕시코의 리더들 덕택에 1846년에 일어난 전쟁은 2년만인 1848년에 멕시코의 참패로 끝난다.


 

전쟁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멕시코가 캘리포니아 뉴멕시코를 미국에 팔아넘기게 된 것이었다. 미국 정계는 새로 획득한 주에서 노예 제도와 관련하여 격렬한 논쟁을 벌여 1850년의 타협을 보았다. 멕시코에서는 정치적 혼란기가 계속되어 전쟁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또한 이 전쟁은 유럽의 1848년의 혁명과 거의 때를 같이하고 있어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



The Mexican–American War was an armed conflict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Mexico from 1846 to 1848 in the wake of the 1845 U.S. annexation of Texas, which Mexico considered part of its territory despite the 1836 Texas Revolution.

In addition to a naval blockade of the Mexican coast, American forces invaded and conquered New MexicoCalifornia, and parts of northern Mexico. Another American army captured Mexico City, forcing Mexico to agree to the sale of its northern territories to the U.S.

Territorial expansion of the United States to the Pacific coast was the goal of President James K. Polk, the leader of theDemocratic Party.[1] However, the war was highly controversial in the U.S., with the Whig Party and anti-slavery elements strongly opposed. The major consequence of the war was the Mexican Cession of the territories of California and New Mexico to the United States in exchange for $15 million. In addition, the United States forgave debt owed by the Mexican government to U.S. citizens. Mexico accepted the Rio Grande as its national border, and the loss of Texas. Meanwhile gold was discovered in California, which immediately became an international magnet for the California Gold Rush. The political aftermath of the war raised the slavery issue in the U.S., leading to intense debates that pointed to civil war; the Compromise of 1850 provided a brief respite.




In the U.S., the conflict is often referred to as the Mexican War and sometimes as the U.S.–Mexican War.[2] In Mexico, terms for it include (primera) intervención estadounidense en México ((first) American intervention in Mexico), invasión estadounidense de México (American Invasion of Mexico), and guerra del 47 (The War of '47).


멕시코-미국 전쟁 이전 이미 미국의 산악인들과 무역상들은 산타 페 길 캘리포니아 길(California Trail)을 통해 이 땅에 자주 접촉하고 있었다. 미국 상선들은 활발하게 무역을 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30년간 멕시코 공화국의 영토였으며 그 이전에는에스파냐 제국의 영역이었다.


미국이 루이지애나 주를 구입한 사유.......유럽 재패라는 터무니없는 야욕에 불타던 나폴레옹은 전쟁비용으로 골머리를 앓던 중....마침 미국측에서 이민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장소로 반드시 확보해야만 했던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의 <전략>상 루지애나지역의 항구인 뉴올리언즈를 구매하려는 토마스 재퍼슨의 특사가 파견된다......마침 전쟁자금이 급박하게 필요하던 나폴레옹.....그 역시 전략상 ....멀리 떨어져서 관리감독하기도 힘든 <미국이민사업>이라는 <장기판의 포> 하나를 포기하고,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유럽지역에서의 유리한 지위확보를 위한 <장기판의 포>로,유럽에서의  전쟁비용 만들기를 선택한다.

 

 

 

토마스 제퍼슨으로서는 뉴올리언즈 항구 하나만 얻어도 천군만마를 얻는 것 같은 효과인데.......특사를 파견할 당시만 해도.....전혀 고려해보지 못한 땅덩어리를 거저 얻는 행운아가 됨..덤으로 획득한 루지애나지역 : 현재의 루지애나,주에서부터 북쪽으로 캐나다지역으로 이어지는 알칸소,미주리,오하이오,몬타나인근까지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영역임....


멕시코 독립 전쟁으로 인하여 약화되고, 재정 능력을 상실한 맥시코 정부는 수도에서 몇천 킬로미터씩이나 떨어진 북방 지방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결국 텍사스는 산타 안나가 지도하는 멕시코 군대를 물리치고 1836년 독립을 달성하였다.


Background..........Mexico was riven by bitter internal political battles that verged on civil war, even as it was united in refusing to recognize the independence of Texas. Mexico threatened war with the U.S. if it annexed Texas. Meanwhile the spirit of Manifest Destiny was focusing American interest on westward expansion.


그 뒤 텍사스 공화국은 연방에 가입해 미국의 한 주가 되고 미국과 멕시코의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등지의 문제로 인해 갈등이 생겼다. 그리고 1846년 리오그란데에서 미군의 도발로 충돌이 일어나 미군 16명이 멕시코군에게 살해당하자 이 사건으로 1846년 5월 미국이 멕시코에 선전 포고를 하면서 전쟁이 일어났다. 미군은 멕시코군의 4배나 되는 대군으로 멕시코군을 격파하여 뉴멕시코의 수도 샌타페이를 점령했고 1847년 3월에는 역사상 최초의 수륙양용 군사작전을 수행해 멕시코 베라크루스에 상륙했다. 멕시코 사령관은 항복하고 1847년 9월 14일 멕시코의 수도멕시코시티는 미군에게 함락되었다. 결국 1848년 1월 멕시코는 평화 협정을 요청해 1848년 2월 2일 멕시코 과달루페 이달고에서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맺어 전쟁은 종결되었다.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미국은 겨우 1,825만 달러를 지급하고 멕시코로부터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와이오밍 주 등을 할양 받아 한반도 넓이의 15배에 달하는 300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넓혔다. 미국은 겨우 멕시코인들에게 진 빚 325만 달러를 떠맡도록 하였고 군사비 지출도 9,800만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 직전 일부 미국 여론들은 전쟁을 반대했는데 지식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전쟁세를 내는 대신 감옥에 가는 것으로 항의했고 랄프 왈도 에머슨은 미국의 폭력을 부끄러워하며 멕시코가 미국에게 독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남북전쟁의 전쟁 영웅 율리시스 그랜트 역시 이를 두고두고 한탄했다고 전해진다.


Republic of Texas.......In 1810, Moses Austin, a banker from Missouri, was granted a large tract of land in Texas, but died before he could bring his plan of recruiting American settlers for the land to fruition. His son, Stephen F. Austin, succeeded and brought over 300 families into Texas, which started the steady trend of American migration into the Texas frontier. In 1829, as a result of the large influx of American immigrants, the Americans outnumbered Mexicans in the Texas territory. The Mexican government decided to bring back the property tax, increase tariffs on US shipped goods, and prohibit slavery. The settlers rejected the demands, which led to Mexico closing Texas to additional immigration. However, Americans continued to flow into the Texas territory.



In 1834, General Antonio López de Santa Anna became the dictator of Mexico, abandoning the federal system. He decided to quash the semi-independence of Texas. Stephen F. Austin called Texans to arms; they declared independence from Mexico in 1836, and after Santa Anna massacred Texans at the Alamo he was defeated at the Battle of San Jacinto and seemed to agree to Texas independence. Texas consolidated its status as an independent republic, winning official recognition by Britain, France, and the United States, which all advised Mexico not to try to reconquer the new nation. Most Texans wanted to join the U.S. but the Americans debated the wisdom on annexation, with Whigs largely opposed. In 1845 Texas agreed to the offer of annexation by the U.S. Congress. Texas became the 28th state on December 29, 1845








Posted by T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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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octocho.tistory.com BlogIcon jejubigfool 2010.08.10 0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요. 예전 남북전쟁을 주제로 발표한 적이 있는데... 제가 알기로 저 때 민병대로 활약했던 사람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1대 루즈벨트 대통령이죠. 베라크루즈 전투는 또 게리 쿠퍼가 주연한 영화로도 나왔는데, 멕시코인들을 아주 부정적으로 묘사해 공분을 샀다더군요. ㅋㅋ.

    • Favicon of https://kokoeun.tistory.com BlogIcon Tessie. 2010.08.10 06: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화 속 인물묘사는 감독의 평소생각이 반영되는거 같아요.
      평소에 백인들이 멕시칸들을 어찌 생각하는지 영화 속에서 느낀다고나할까....

    • Favicon of https://kokoeun.tistory.com BlogIcon Tessie. 2010.08.10 2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베라크루즈가 원가...궁굼해서 검색해보니 현대차만 좌르륵 보이다가 드디어 영화란걸 알았는데요.음...이거 신청해서 꼭 봐야할거같네요.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octocho.tistory.com BlogIcon jejubigfool 2010.08.11 16: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얼마 전 '서부의 7인' 메이킹 필름 보다 보니까 관련 내용이 나오더군요. 영화 로케를 멕시코에서 했는데, '베라크루즈' 때문에 멕시코 농민들 복장에 흙 하나 묻히지 못했다고요.. ㅋ

    • Favicon of https://octocho.tistory.com BlogIcon jejubigfool 2010.08.11 16: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덕분에 그때 기록이 새로 났네요. 즐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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