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 무려 2년 만에 약속했었던 포스팅이 올라가네요.오늘 2016년 1월6일 부터 조선시대 유교학자(선비)들이 누구인지 심도있게 자료를 모으는 중입니다.이 포스팅들을 완성하려면 한 일년 가량 소요될듯하네요.우선 한국여행에서 돌아오면서 구입한 책들을 읽고 공부해야만 합니다.특히,천진암-주어사의 강학(일종의 세미나)에서 실학자들에게 천주교의 교리를 정확하게 교육시켜 전파시킨,이 벽에 관한 책,그가 저술한 성교요지가 가장 흥미를 끄는 책이네요.가슴이 설레일 정도....!!!! 이상은,목하 이벽과의 열애에 빠진 테씨의 근황입니다.

그리고 2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원래의 이 포스팅엔, 내가 한국선비들에게 필이 꽂힌 이유가 적나라히 표현됐는데 다 지우고 간략하게 요약하자면,바로 내 남편인 카톨릭남자에게서 한국선비의 꼬장꼬장한 자존심과 고결함을 만났고,그동안 고리타분하게 여겨 온 조선사회와 선비들을 다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입니다......앞으로 제 이야기는,여기부터 시작합니다.☞ 성균관 成均館 - 고려말과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 & 전주향교,서당

클릭 ☞ 정약종의 주교요지

 

명동성당에서 오른편 벽에 걸린 이벽과 공부하는 선비들 사진 ↓↓↓

약현성당↑↑↑: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박물관되어버린 명동성당의 어둠과 완전하게 대비되는 이 성당의 아름다움에 반하다!!! 특히 무릎을 꿇고 기도할수 있는 장궤가 있는 성당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이 약현성당 뿐이었다.바로 그 장궤에 꿇어앉아 기도하며(묵주신공) 찬란하게 부서지는 스테인글래스의 햇살을 감상하였다.내 영혼 깊숙히 인화되어 박힌 그 날의 약현성당!!!!

 

클릭 ☞ 세계문명 4대 불가사의-소크라테스,석가,공자,토마스 제퍼슨,21세기 인터넷

 


유교가 무엇인지 아주 일목요연하게 설명이 잘 된 자료클릭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9115#TABLE_OF_CONTENT1

 

위키백과 -  군자(君子)는 유교에서 '성품이 어질고 학식이 높은 지성인'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 춘추시대 때에는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을 부르는 말로도 쓰였다. 아내가 남편을 일컫는 말로 쓰기도 한다. 《예기(禮記)》 〈곡례편(曲禮)〉에 따르면, 군자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선한 행동에 힘쓰면서 게으르지 않은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고 하였으며, 《논어(論語)》 〈이인편(里仁)〉에는 '군자는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잘 알고, 소인은 어떤 것이 이익인지 잘 안다. 군자는 어찌하면 훌륭한 덕을 갖출까 생각하고, 소인은 어찌하면 편히 살 것인가 생각한다.'는 말로 군자를 정의하였다.

명동성당,2015년11월말

클릭 ☞  주문모 신부와 신유박해 - 차기진(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클릭 ☞  한국천주교(1800년대)-순교의 피(4대 박해 사건) 역사를 공부해보자

 

한국 천주교회의 100여 년간의 박해시대 VS 네로 황제 시대(54~68년)베드로․바오로 순
(200여년 동안의 카타콤브시대-순교의 시대)......오늘날 카톨릭교회(하느님의 나라)가 예언된 요한묵시록


1,신해박해 (辛亥迫害 정조15년) 1791년...윤지충(尹持忠)과 신주(神主)를 불태운 진산사건(珍山事件): 결과-윤지충과 권상연의 참수,이승훈 배교,권일신 유배중 사망,그외의 교우들의 배교로 일단락
 

2,신유박해 (莘酉迫害 정조24년) 1801년...천주교에 비교적 관대했던 정조임금의 사망후,11세의 어린 임금순조를 섭정한 정순왕후(노론벽파)의 남인 시파(대부분의 교회지도급인사들의 소속)를 향한 복수극 - 이 때 정하상의 나이 6세로 그의 부친 정약종과 형님인 정철상 순교한다.자세한 내용은 여기 클릭 ☞정약종의 주교요지
 

3,기해박해亥迫害 헌종5년) 1839년...신유박해이후 박해를 피한,깊은 산속에서 옹기를 구우면서 생계유지,자녀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신앙심을 유지하도록 돕는,천주교신자들의 공동체가 형성된다.특히 정하상의 활동이 두드러진 시기-로마교황청에서 주교와 사제파견되며,성사를 거행하며,신학교에서 사제양성, 비로소 교황청과 소통하는 한국천주교회의 모양이 갖추어짐.이 때,모방(Maubant)신부등 프랑스에서 온 3인의 사제와 정하상을 포함한 한국천주교 지도자들이 순교.

4,병인박해 (丙寅迫害 고종3년) 1866~1873년...(포스팅하단 참조)...가장 오랜 기간 대대적인 순교자 발생

...1894년 충청도 배티성지에 프랑스 임가밀로 신부님 일화.자료 찾는 중(1대 임가밀로신부님-을미사변에서 민비시해 후 거저 들어 온 성당터에 얽힌 에피소드)...1895년 충북 음성군 감곡성당터 매입.....

 

 

 

병인박해-조선 후기 대원군이 가톨릭 교도를 대량 학살한 사건.

.......병인박해[ 丙寅迫害 ]

조선 후기 대원군이 가톨릭 교도를 대량 학살한 사건.이 사건의 원인(遠因)은 당시 시베리아를 건너온 러시아의 남하(南下)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1864년(고종 1) 러시아인이 함경도 경흥부(慶興府)에 와서 통상하기를 요구하였을 때 대원군 이하 정부요인들의 놀람과 당황은 대단하였으나 이에 대한 대책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때 조선에 와 있던 몇몇 가톨릭 교도들은 대원군에게 건의하기를 한·불·영 3국동맹을 체결하게 되면 나폴레옹 3세의 위력으로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을 수 있다 하여, 대원군으로부터 프랑스 선교사를 만나게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시기를 놓치고 말았으니 당시 지방에서 포교하고 있던 다블뤼 주교와 베르뇌 주교가 서울에 돌아왔을 때는 조정에서 이미 러시아인의 월경과 통상요구가 시일이 경과하여 한낱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하였을 때였다. 그리하여 3국동맹이 체결되면 포교의 자유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선교사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오히려 그들은 지둔(遲鈍)과 무책임한 주선(周旋)의 발설로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톨릭교를 서학(西學)·사학(邪學)이라 하여 배척하던 당시, "운현궁(雲峴宮)에도 천주학(天主學)쟁이가 출입한다"는 소문이 퍼졌고, 조대비(趙大妃) 이하 정부 대관들이 가톨릭 교도의 책동을 비난하자 대원군은 이들 가톨릭 교도를 탄압하기로 결심하였다.

 

클릭해보세요 ☞  모방 신부와 기해박해 -차기진 신부님의 연재글 중에서

1866년 가톨릭교 탄압의 교령(敎令)이 포고되자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학살당한 것을 필두로 불과 수개월 사이에 국내 신도 8,000여 명이 학살되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아직도 체포되지 않은 3명의 프랑스 신부의 행방을 찾고 있었고, 이 사건으로 산속에 피신하여 쫓겨 다니다가 병으로 죽고 굶주려 죽는 부녀자와 어린이가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이때 탈출에 성공한 리델 신부가 톈진[天津]에 있는 프랑스 해군사령관 로즈 제독에게 이 사실을 알림으로써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네이버 지식백과] 병인박해 [丙寅迫害] (두산백과)

약현성당 오른편에 위치한 서소문순교자박물관에 걸린,선교사들과 정하상(정약종?)성인초상화

클릭 ☞ 정약종의 주교요지



Posted by Tessie.


........

댓글을 달아 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