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bible)이란 무엇인가?

 

 

 

<참고>이 포스팅에 실어놓은(펌질한) 자료가 너무 방대해서 나중에 따로 분리해서,같은 주제로 글이 하나 이상 더 만들어질 예정입니다.특히 현재 이 글의 하단에 사이언스타임즈 자료는,무신론자,불가지론자라면, 반드시 필독할 자료입니다.성경(bible)이란  73권의 책이 비치된 도서관입니다.이 도서관은 크게 구약(46권),신약(27권)이란 섹션으로 구분되며,다시 구약은 5권의 책인-토라(모세오경,율법서),역사서,지혜서,예언서로 구분됩니다.

 

신약은 4권의 복음서와 사도행전,그리고 바오로와 사도들이 천주교신자단체에게- 제발,분열되지 말고,일치하라는 눈물어린 호소를 써서 보내는 21개의 편지와 마지막으로 인류의 미래(결코 인류멸망이 아님,카톨릭교회와 전례)를 예언한 묵시록이 있습니다.개신교에서는 왜 구약성서를 39권이라고 주장하는지 그 역사적인 배경(카톨릭교리를 거부하기 위한 술수),이 포스팅 하단에서 허영업신부님이 쓴 글에서, 누가 옳은지 스스로 성찰해가면서,성서권수의 차이를 참조하십시요....

 

 

구약성서(46권) The Books of the Old testament   - 모세오경(히브리어-토라),역사서,지혜문학,예언서
신약성서(27권) The Books of the New testament - 4복음서,사도행전,바오로(14)와 사도들(7)편지,묵시록

 

 

구약에서의 모세오경(율법서)는- 창세기,탈출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를 말합니다.

 

 

창세기는 1장에서 11장까지의 내용이 인류전체의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부터는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민족의 가족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그리고 탈출기(출애굽기)를 포함한,나머지 4권의 책은 모세가, BC1300년 무렵,람세스2세의 치하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민족들을 이끌어서,이집트땅에서 탈출하는 내용을, 각각의 저자(그게 누군지 전혀 모름)가 같은 주제를, 각각의 시선으로 담아서, 기록한 책들입니다.이 4권의 구약성서는 신약에서의 4복음서와 같은 구성입니다.

 

신약에서는,AD30년경에 예루살렘이란 지역에서,실제로 일어났었던 사건 - 죽음에서 부활한 인간,예수의 행적을,4명의 관점이 다른 작가가 각각의 시선으로 기록했듯이,구약의 4권의 성서도 모세가 BC1300년 무렵에 노예생활로 부터 구출한 이스라엘민족들,도대체 그들에게 40년 동안의 광야살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각각의 관점에서 기록한 것이지요.인간은 구조적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쉽게 바꾸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이란,자신이 처한 굴욕적인 인간조건, 종살이의 고통을 잘 알지만,엄청난 수련이 필요한 육체의 한계(생리욕구,안전욕구,소속감욕구)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냥 노예생활에 주저 앉아서 자기방어에 들어갑니다.자신에게 종살이 인생을 벗어나라고 촉구하는 자(카톨릭교리)를 증오합니다.그게 인간입니다.그러한 인간조건을 기록한 것이 바로 모세오경(율법서)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기초로, 구약과 신약이 얼마나 절묘한 일치(구약에서의 예언과 신약에서의 실현)인지!! 과연 성서가 무엇이기에 이리도 기승전결의 기법을 완벽하게 이루는지!!!를 알려면 필독하셔야 할 포스팅이 하나 더 있습니다.여기 클릭 5 사도요한은 누구인가-축일 12월27일(모세와 여호수아,베드로와 요한)

 

 

 

 

자세한 내용은,포스팅하단 자료 필독 - 성서는 이렇게 읽어야 한다 (베난티우스 더 레이유)

 

 

1,DNA

- DNA pool 지도 (노아의 자손 - 창세기 6장~11장) 노아의 세 아들 - 셈,함,야펫

 

이 지도의 의미 -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유전자가 세월에 따라서 각 대륙으로 진출합니다.아시아에 진출한 북방계 아시아인인 한국인의 조상으로 동이족은 셈의 후손입니다.성서기록에 의하면 셈에게는 다섯아들이 있고,이후 500년을 더 살며 아들과 딸을 많이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이렇게 성서에 일일이 기록된 자손들 이름 외에도,셀 수 없이 많은 자손이 있다고 부연 설명하면서,나이도 500살을 더 살았다고 기록한 성서의 인물은(노아의 아들 중에서) 셈이 유일합니다!!!!..........창세기 11장 11절 참조하시라!!!

 

 

 

 

당연히 셈의 그 번창한 자손들 중에 동이족이 들어 있다는 추정이 가능합니다.(창세기 11장 11절)

 

 

필독 포스팅 클릭 ☞ DNA지도,유전자풀(Gene pool) -(펌)인간학적 고찰

 

 

 

 

2,언어

(수메르어,아카드어,셈어) 나중에 작성할 예정입니다.

 

 

 

연관 포스팅 클릭 ☞ 예수실존,죽음,부활의 과학적증거-Turin Shroud(the Holy Shroud)신은 존재하는가

 

 

창세기 11장 7절- 자신들의 과학적인 지식을 과시하며 바벨탑을 쌓던 인류(바벨론)에게 분노하신 하느님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자.” 주님께서는 그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다. 그래서 그들은 그 성읍을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하여 그곳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땅의 말을 뒤섞어 놓으시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기 때문이다.

 

 

 

3,고고학(인류학)

 

-인류 아프리카 기원설, 성서와의 일치(창세기1장~11장)

 

 

 

 

 

연관 포스팅 클릭 ☞ 진화론이란,지구가 둥글다는 걸 모르는 수준의 야만적 가설-DNA와 세포들

 

 

아래 자료를 읽기 전, 관전포인트는 기후를 관장하는 분이 하느님이란 점입니다.

 

갑자기 사라진 아카드제국의 운명은,무신론자들에게는 우연히 일어난 불운이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천지운행을 담당하신 존재자를 믿는 신앙인들에게 한 문명이 사라질 만큼 혹독한 기후변화란,결코 우연일 수 없는 하늘의 이치입니다.자신을 신으로 숭상하라고 자기백성들에게 명령한 이 나람신(마르둑)의 교만함을 어찌 정의로우신 분이 보고만 있겠는가? 이 자료의 출처인 사이언스타임즈에는 이외에도 날씨와 관련한 전투,등등 더 흥미로운 자료도 많네요 여기 클릭 ☞기후 건조화와 아카드 제국의 멸망   기후변화로 사라진 우바르 문명

 

 

갑자기 사라진 아카드제국.....나람신(사르곤왕) 하단의 사이언스타임즈에서 퍼온 자료를 참조하시라.특히 구약에서 등장하는 모세가 탈출하던 시기의 이집트의 왕 람세스2세,아카드의 사르곤왕가,페르시아의 고레스(카루스)왕가, 등등은 이미 고고학에서 실재했었던 왕국으로 밝혀진 상태입니다.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성서내용이 실재로 일어난 일들이란 걸 증명해준다는 사실이 우연일까요?!!!

 

과학이 물질세계에서의 참을 찾듯이,우리의 신앙도 영적인 세계에서의 참을 찾던 사람들이 만난 참진리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일치할수밖에 없습니다.전지전능한 창조자가 실재하며 그 창조자가 만든 세상 안에서 일어난 사실들을 찾아냈으니,당연히 과학과 성경은 일치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창세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결론적으로 단언이 가능합니다.

 

창조자가 없이 이 세상에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때 우리 앞에,거대한 논리의 벽이 나타납니다.

 

.......그럼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그 하느님(창조자)이란 존재는 누가 만들어?

 

 

창세기1장1절의 내용은,물질계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영적인 세계에 관한 기록입니다.이 영적인 세계는 인간의 과학지식으로는 그 증명이 불가능하며,오직 신성한 기운(spirit),사악한 기운(spirit),으로 표현이 가능한 어떤 에너지상태입니다.바로 그러한 에너지상태에서의 어떤 존재(당연히 하느님)에 의해서 물질계가 만들어진 거지요.!!!

 

물질계의 모든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먼저 그 창조자가 있어야 하지만,이 영적인 세계에서의 하느님이란,과학실험에서의 거대한 어떤 에너지로서, 물질계를 벗어난 존재, 과학적증명이 불가능하지만 이성의 힘-논리력으로는 분명히 실재하는 세계입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성경권수 차이에 관하여

 

 

<모세오경 또는 토라(히브리어)>

창세기      Genesis  [니시스]
출애굽기   Exodus   [/서더스]
레위기      Leviticus  [르/티/커스]
민수기      Numbers [넘벌스]
신명기      Deuteronomy [듀/터/너미]


 

<구약 역사서 Historical Books of the Old Testament>

여호수아        Joshua
판관기            The Book of Judges
룻기               The Book of Ruth
사무엘 상/하    I Samuel,II Samuel
열왕기 상/하    I Kings , II Kings
역대기 상/하    The First(Second)Book of the Chronicles

에즈라            Ezra (Old Testament)
느헤미야          Nehemiah[늬어야]
토비트            Torbit
유딧               Judit
에스델            Esther
마카베오 상/하  Maccabees

<시서와 지혜서>

욥기    The Book of Job [더 부껍 죱]
시편    the Book of Psalms;the Psalm 《Ps.》
잠언    an aphorism;an adage;a maxim;an apo(ph)thegm;『성경』 the proverbs
전도서 (The Book of) Ecclesiastes 《Eccl., Eccles.》
아가     The Songs of Solomon
지혜서    (Wisdom)
집회서    (Ecclesiasticus)



<예언서> 이사야,에레미야,에제키엘,다니엘,에스겔,바룩서,호세아,요엘,아모스,오바디야,미가,요나,나훔,하바꾹,스바니야,하깨 ,즈가리야,말라기,애가

 

 

 허영엽 신부....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그들 선조들에게 베푸신 구원 업적을 처음에는 구전으로 전하다가 차츰 글로 옮기게 되었다. 이렇게 기록된 것들은 각 지방과 시대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었다. 기원후 100년께 유다인들은 얌니아라는 곳에서 많은 책들 가운데 성서 목록을 정하게 된다. 한 종교가 경전 목록을 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들이 무엇을 믿는가가 그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때 채택된 성서 목록이 정경(正經)이 되고, 이 목록에서 제외된 책들이 위경(僞經)이 된다. 그런데 이 결정에 대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유다인들은 이의를 제기했다. 그들은 히브리말로 쓰여진 39권 성서 이외에 소위 위경이라고 부르는 다른 책들도 성서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초대 그리스도교인들도 기원전 2∼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 성경 70인역(LXX)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70인역 구약성서'에는 정경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 '토비트, 유딧, 에스델서의 일부, 지혜서, 집회서, 바룩, 다니엘서 일부, 마카베오 상·하' 등의 책들도 있었다. 초대 교회는 기원전 2세기께부터 기원후 1세기 사이에 널리 유포돼 있던 종교적 서적들 가운데 경전에서 제외된 모든 서적들을 위경이라 불렀다. 위경의 어원은 본래 '숨겨진' 또는 '감춰진'이라는 뜻이다. 이들 위경 중에는 그 내용이 정통적 신학이나 교의와 비교해 볼 때 이단적이거나 출처가 불분명하고 허위적인 내용의 책들도 있었다. 그래서 초대 그리스도교회가 성립되어가면서 '숨겨진 것'은 '거짓된 것'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가톨릭 교회는 기원후 382년에 열린 로마 주교회의에서 제2경전을 포함한 총46권의 구약과 27권의 신약 목록을 확정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가톨릭 교회의 정경 시비는 계속되다가 1548년 트리엔트 공의회 결정으로 막을 내린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교황 다마소1세가 성 예로니모를 시켜서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Vulgata) 역본을 성서로 받아들였다. 공의회 교부들은 개신교에서 정경으로 인정치 않고 '외경'으로 분류시킨 70인역의 몇몇 책들을 초대교회 전통에 따라 '제2경전'이라는 공식적인 이름으로 정경화했던 것이다. 이처럼 구약의 제2경전은 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등 그리스어 성서만이 전해주는 부분들을 칭할 때 사용한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70인역 대신 히브리어로 기록된 것만 성서로 인정했다. 왜냐하면 일부 가톨릭 교리들이 히브리말 성서에 없는 70인역 본문에 그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토비트서에서 비롯된 수호천사 교리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제2경전을 개신교 형제들은 외경(外經)이라 번역하여 정경으로 인정치 않고 있다. 그런데 꿈란 공동체에서 발견된 성서에서 개신교가 인정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히브리어로 발견되었다. 따라서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성서 번역자들이 '외경'으로 처리한 히브리말 성서에 포함되지 않은 70인역 각권들은 대부분 망각되어오다 최근에 와서야 정경과 더불어 번역되고 출판되기 시작했다.<평화신문, 제758호(2004년 2월 1일)

 

연관 포스팅 클릭 ☞  창세기1장-우주탄생(물,불,원소,화학반응),빅뱅이론

 

 

성서는 이렇게 읽어야 한다.......베난티우스 더 레이유

 

 

 1970년 이탈리아 바오로 출판사에서 펴낸 베난티우스 더 레이유의 “성서 앞에 선 현대인” 중 구약 부,저자 베난티우스 더 레이유 신부는 카푸친 프란치스꼬회 소속으로 1917년 네덜란드 라렌에서 태어나 1943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성서’(Bible)란 이름이 생기기까지
 
지중해 동쪽 해안, 레바논의 최고 봉우리를 등지고 베이루트에서 북쪽으로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Jebeil이라 불리는, 주민 2천 명 남짓의 작은 소읍이 있다. 바다쪽에서 보면 마을은 마치 높이 솟은 암벽 위에 있는 새 둥지처럼 자태를 드러낸다. 마을의 이름은 바로 이러한 위치를 암시한다. Jebeil은 언덕 혹은 산을 뜻하는 아랍어 jebel에서 나온 말이다.
 
이 갑(岬)의 꼭대기에는 십자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사 양식의 중세기 성이 웅대한 유적으로 남아 있다. 말하자면 언덕 전체가 폐허투성이다. 십자군 시대의 성 곁에는 그 원형 기둥이 부분적으로 손상되지 않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극장이 있다. 그리고 그 가까이에 기원전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이집트의 영향을 반영하는 피라미드 형태의 신전이 세워져 있다. 아래층에서는 고대 신전의 폐허를 볼 수 있다. 그것은 보편적으로 존경받던 셈족 신 엘(El)을 가려 기원전 3000년경에 건축된 것이다. 좀더 깊이 발굴해 들어가면 마침내 도시의 원시 성벽과 둥근 천막 형태로 건축한 아주 오래된 집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집들은 기원전 40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대에 언덕 꼭대기에 하나의 웅장한 도시가 세워져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반쯤 바다에 면해 있고, 북쪽에 강어귀가 있는 덕분에 이 도시는 애초부터 천연의 항구를 지녔다. 어쩌면 이 항구는 엄청난 양의 산업 생산물을 마치 자석처럼 끌어 모으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항구인지도 모른다. 아라비아,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근동 전체의 상품들은 낙타 등에 실려 이 항구로 집결된 후 다시 배에 실려 지중해의 해안으로 운반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배들은 그 곳의 풍요를 싣고 이 고대 해양 도시로 돌아왔을 것이다. 고대에 이 페니키아의 요지는 Gebal - 가장 오래된 바빌론 문헌에는 Gablu로 되어 있다 - 이라 불리었다. 고대 그리스가 통치하던 때에는 그 이름이 그리스화되어 Byblos가 되었다. 한편 실제 아랍식 명명(Jebeil)은 분명히 고대 셈족 명칭과 관련된다.
 
그리스 시대의 이름은 우리에게 흥미롭다. 종종 우리는 한 도시 - 산업 도시든 농업 도시든 혹은 해양 도시든 - 의 이름이 그 도시 특산물의 상표가 되는 것을 본다. 진가 있는 시칠리아 포도주의 생산지dls 마르살라(Marsala)의 경우가 그렇다. 아스트라칸(Astrakan)은 카스피 해에 있는 소련의 항구다. 그 이름은 그 곳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무두질하는 모피를 일컫게 되었다. 소아시아에 있는 고대 페르가모(Pergamo)는, 그 곳에서 특별한 기술로 종이가 제조되는데 자신의 이름을 “pergamena”에 넘겨주었다. 마찬가지로 그발(Gebal)이란 페니키아의 도시는 그리스 시대에 이집트에서 수입되는 상품 파피루스에 자신의 이름 비블로스를 넘겨주었다. 파피루스는 비블로스에서 엄청난 양이 거래되었고, 거기에서 레바논 주변의 셈족 나라들과 팔레스티나로 운송되었다. “비블로스의” 혹은 “비블로스”는 파피루스, 즉 필기 재료와 동의어가 되었다.
 
고대에 파피루스는 다양한 형태로 제조되었다. 흔히 그것은 하나의 막대에 둘둘 말아서 두루마리 형태를 이루는 긴 줄무늬 형태로 만들어졌다. 두루마리에 기록된 책들(정확히는 “volume”)은 폈다 말았다 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파피루스는 분리된 낱장의 형태로도 제조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접고 묶을 수 있었으므로 책 - 비블로스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그리스어로 비블리온, 즉 “비블로스산(産)”이라 불리었다 - 의 형태로 철하게 되었다.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특별한 책들이었던 성경들의 모음은 “성서”(l마카 12,9) 혹은 아무런 수식어 없이 “책들”이라 표기되었다. 이러한 책들에 대한 그리스식 명명(ta byblia)은 라틴어에서 “biblia”로 다시 취해졌고, 라틴어를 거쳐 현대 서구 언어에서 거의 예외 없이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침묵의 유적지 이름 그발 - 비블로스는 오늘날에도 성경(bible)이란 말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성경 해석의 쇄신
 
국민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젊은 엄마는 아이가 학교에서 배운 성경 이야기를 듣고 당황할 때가 있다. 엄마에게는 불과 몇 해 전에 자신이 배운 내용이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마찬가지로 늙은 본당 신부는 젊은 보좌 신부가 신학교에서 배운 성서의 많은 문제에 대해 듣고, 혼란에 빠지고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탄식하며 자문한다. “옛날의 신앙 가운데 아직 남아 있는 게 무엇인가?” 비슷한 경우를 수없이 인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젊은이들과 늙은이들은 성경을 대할 때 서로 충돌하고 일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적어도 늙은이들은 젊은이들을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한다.
 
사실 지난 몇 십년 간 성서에 대한 설명을 하는 데 있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가장 오래된 이 “책”은 내용과 글자에 관한 한 그대로이나 근본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설명된다. 젊은이들과 노인들은 실제로 같은 말을 읽지만 각기 거기서 발견하는 의미는 때때로 전혀 딴판이다.
 
이러한 변화에 있어서 중요한 해는 제2차 세계 대전 증인 1943년이다. 왜냐하면 이 해에 성서 연구의 쇄신에 관한 회칙인 “성령의 감도”(Divino afflante Spiritu, 9월 30일)가 반포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19세기초에 많은 학자들은 과학의 새로운 발견을 고려하면서 성서를 설명해야만 할 때 확실히 당혹감을 느꼈다. 사실 이 회칙은 새로운 지평을 열면서, 새로운 가능성뿐만 아니라 성경의 옛 말씀을 달리 해석할 필요성도 제공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거의 배타적으로 하느님의 영원하고 변할 수 없는 특성에 관해 강조했고, 전통적인 해석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이단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다른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확신하던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가치 자체와 나아가서는 하느님의 존재마저 의심했다! 사실 과학의 확실한 결과에 모순되는 책을 하느님께 영감을 받은 것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이렇듯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같은 19세기의 어떤 해석학자들은 성경에 대한 설명을 과학의 관점에 적응시키려는 시도를 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쇄신에는 자유로운 프로테스탄트 학자들이 선두를 달렸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다 폭넓은 자유를 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많은 이틀은 성서의 영감성과 신적 기원을 거의 혹은 전혀 보호하지 않았다.
 
이러한 자유 비판의 결과, 교회 분위기 속에는 어떤 두려움이 일었고 따라서 성서 연구의 숙영지 같은 것이 생겨났다. 이러한 방식으로 가톨릭적인 해석과 과학 사이의 골은 더욱더 엄청나게 깊어만 갔다.
 
레오 13세의 회칙 “섭리하시는 하느님”(Providentissimus Deus, 1893년)은 성경에 대한 가톨릭 학문에 충격을 다시 주기에 참으로 필요했다. 사실 성서학자들은 두려움과 불확실함을 지니고는 있었지만 새로운 설명의 가능성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쇄신을 이끌기 위한 확실한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교회 당국은 때때로 그들이 새로운 연구를 어느 지점까지 이끌어 갈수 있을지 알지 못해 경악했다. 결과적으로 성실한 지향을 갖고 착수된 많은 시도들이 교회 당국에 의해 잘리게 되었다. 이는 우리 세기의 초기 몇 십년 간에 특히 입증되었다. 그때 설립된 지 얼마 안된 성서위원회는 새로운 설명에 대해 보통 전통적인 관점을 방어하면서 답변을 제시했다.
 
그리고 위의 위원회가 제시한 전통적인 규범이 해석의 거의 전영역에 관여했기 때문에 진정한 쇄신을 위한 공간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따라서 1920년과 1930년 사이에는 전통적인 관점이 거의 배타적으로 지배했다. 그 시대에는 어떤 새로운 것이 드물게 제시되었거나 일반적으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만 주의를 기울였다. 한마디로 근원적인 변화를 위해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동안에, 비록 전쟁의 폭력이 중대한 이니셔티브를 불가능하게 할 것처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근원적인 쇄신이 예고되었다. 한편 1943년에는 뜻밖에도 성서 연구에 관한 새로운 회칙이 반포된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크나큰 호기심을 가지고 그 내용을 기다렸다. 1900~1920년의 규범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쇄신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이 제공될 것인가?
 
이 회칙의 반포는 모두에게 기쁨과 위안의 동기가 되었다. 그것은 해방을 주는 말씀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밀한 규범에 따라 성경에 대해 새롭게 설명할 과제를 해석학자들에게 제시하면서, 건강하고 근원적인 쇄신의 가능성을 거의 제한 없이 허용했기 때문이다. 기초가 마련되었던 때로부터 50년이 지나서 마침내 착수된 건물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진 것이다.
 
성서 연구의 쇄신에 관한 긴 회칙에서 비오 12세는 우선 지난 50년간의 가톨릭적 해석을 종합했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사상은 미래에로 향해진다. 즉 참된 쇄신을 위한 계획을 제안하고, 매우 구체적인 규범을 수립한 일이다.
 
구체적인 규범은 몇 마디로 요약된다. 즉 문학유형(문체의 종류)에 대한 관심이다. 이러한 말 속에 “활동 계획(plan de campagne)”이 제안되고 모든 새로운 가능성이 요약된다. 성경을 해설하는 사람은 누구나, 올바르고 새로운 방식으로 본문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바로 거기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비록 이 짤막한 지침이 어떤 설명을 필요로 한다 하더라도, 성서의 문학적인 특성과 성서 각권의 인간적인 부분을 정밀 조사하는 기준선에 대해 다룬다는 것은 누구나 이미 알고 있다.
 
19세기가 다 끝나도록 신자들은 성경을 거룩한 책으로, 하늘에서 직접 떨어진 하느님의 책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하느님 말씀의 절대적인 권위를 강조했다. 왜냐하면 그 권위는 오류가 없고, 이 말씀으로 신앙의 진리를 입증했고 반대자들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성경의 어떠한 본문 안에서도, 무조건적이고 차별 없이, 하느님의 절대적인 말씀이 담겨 있는 것을 보았다. 반면에 새로운 회칙은 인간적인 요소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요구했다. 성서는 단순히 하느님의 말씀일 뿐 아니라 또한 인간의 말이며, 나아가 많은 사람들의 말이다. 그들은 각기 저자로서 성서 본문의 창조에 관계했다. 모든 저자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입장과 자신의 환경에 영향을 받았다. 그들 각자는 사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 혹은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그들의 작업 방식과 특히 그들의 의향이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달랐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책이 생겨났다. 성서가 “천상적인 단일체”가 아니라 몹시 다양한 작품의 모음이고, 거기에 인간적인 모든 감정이 표현되어 있다는 것은 이렇게 설명된다.
 
성경에는 시의 형태로 가르치고 삶의 지혜를 전하고자 하는 책들이 있다. 어떤 책들은 강렬하게 훈계하는 경향과 함께 예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른 많은 책들은 가깝거나 먼 과거의 놀라운 사건에 대한 역사적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서, 예언서, 그리고 교훈서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도 가르칠 수 있고 예언적 메시지도 역사에서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이러한 숙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느님께서 감도하시는 효력이 단지 쓰여 진 글자에뿐만 아니라, 인간인 저자의 정신과 의향에 더욱더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단지 글자만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의향을 연구할 수 없다. 오히려 책의 총체, 작품의 특별한 성격, 문학 유형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오로지 책의 성질에 의해서만 하느님의 의향을 알 수 있고, 오로지 하느님의 의향만이 그르칠 수 없이 참되다.
 
이 모든 것은 어쩌면 복음서의 비유를 조사해 봄으로써 더욱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비유의 목적은 교리를 가르치고, 교훈적인 문학 작품의 지혜를 주는 데 있다. 예컨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역사적 의향으로 고려하는 것은, 즉 그것을 역사적 지리학적 논리와 관련 지으려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비유의 유일한 의향은 도덕적 가르침을 주는 데 있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루가 10,37). 이렇게 분명하고 중요한 의향을 간과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요나의 예언서를 마치 역사적 이야기인 양 읽는 것은 잘못이리라. 이 책은 역사에 대한 의향을 지닌 것이 아니라 예언적 메시지, 하느님 사랑의 보편적 성격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욥기의 시적 가르침을 역사적 정보로 보아서도 안된다. 그것은 오히려 신학적 문제에로 이끄는 서문이다. 역사서에는 자연히 역사에 대한 것이 있다. 그러나 언제나 같은 방식 혹은 같은 모양으로 첫 독회에 보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도 저자 - 즉 하느님 - 가 어떤 척도로 역사를 기록하고자 했는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어떤 것이 그 책의 문학 유형인지 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역사서에도 단계가 있다는 것은 새로운 회칙에 완전히 부합한다.
 
그러나 이것이 다양한 문제들의 해결에 길을 제시했다 하더라도 회칙에서 다루거나 논의하지 못한 다른 것들이 있었다. 게다가 교회의 영적 사목적 삶뿐만 아니라 계시된 교의 자체에 실질적으로 끼어들었던 - 그리고 끼어드는 - 다른 것들이 있었다.
 
논리적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자격을 갖춘 순회 재판이었다. 실제로 닥쳐왔듯이, 맹렬하고 격렬한 논쟁을 예상하게 한 엄청난 양의 오래 되고 새로운 문제들이 여기에 맡겨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번갈은 토론을 거친 뒤, “계시 헌장”(Dei Verbum)이 완성되었다. 비록 냄비에 담긴 성서적인 문제들을 모두 대하지 못했고 하물며 다 논의하지 못했지만, “계시 현장”은 가장 현대화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헌이다. 이 문헌은 계시의 개념(1장), 따라서 계시의 전달 그리고 성전(聖傳)과 성서간의 해묵은 문제(2장)를 다루고 탐구한다. 3장은 성경의 “무류성보다는 가르쳐 주신 진리”의 개념에 좀더 머물면서, 영감과 해석에 관해 말한다. 이 장 전체는 비상한 중요성과 가장 새로운 방향에 관한 것이며, 특히 11~12항의 경우 비오 12세의 교의가 다시 새로운 강조와 지평을 띠고 나타난다. 복음서의 진리와 역사성에 관한 중대한 문제는 5장에서 - 보다 상세 하게는 18, 19항에서 - 다루어진다. 아주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개념을 분명히 하고 결정할 여백은 학자들에게 남겨 두고 있다. 종합적으로 보아, “계시 현장”은 “영감을 받아” 재선포되고, “참되고, 신앙과 영적 삶과 설교의 최상 규범이며, 신학의 영혼”인 성서에 대하여 파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점들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해석학자들의 탐구의 자유를 고스란히 남겨 두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격려하고 그들의 학문적 방법의 합법성을 인정한다(23-25항). 그러므로 레오 13세와 더 나아가 비오 12세에 의해 완성되고 성별된, 개방과 쇄신의 교의는 그만큼 지적인  것이었고 적시에 착수된 것이었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0년 1월호]

 

기후 건조화와 아카드 제국의 멸망

 

 

click ☞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atidx=0000044832

 

세계 최초의 제국, 3세기 걸친 건조화로 붕괴

 

후빙기 고온기에는 기후적으로 생활하기에 적합했다. 사람들은 특정한 지역에 모이지 않고 흩어져 농경 생활을 했다. 지금으로부터 5천년 전 갑자기 기후 건조화가 닥쳤다. 비를 가져오던 적도 서풍이 불어오지 않은 것이다. 기온이 내려가면서 농지가 말라붙자 사람들은 큰 강 유역으로 모여들었다. 바로 이곳이 문명의 4대 발상지인 나일 강, 유프라테스 강, 인더스 강, 황하 강 유역이었다. 유입되는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관개농업이 발달했고, 농작물 개량이 이뤄졌다. 또 유입민을 노예로 삼아 신전이나 피라미드 등의 대규모 건축물들이 만들어졌다.

기원전 2350년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만들어진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아카드(Akkad)’라 불리는 도시국가가 세워졌다. 아카드 제국을 세운 사르곤 왕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여러 도시국가를 정복했다. 그는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서 약 1천300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을 세계 최초 제국인 ‘아카디안’의 곡창지대로 만들었다. 그 후 100여 년 동안 아카드 제국은 사르곤과 그 후계자들의 성공적인 통치 아래 번영을 구가했다.

제4대 왕 나람신은 반란을 진압하고 전쟁을 벌여 아카드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차지했다. 그런데 아카드 제국이 어느 날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졌다. 아무런 기록도 남지 않았다. 아카드 제국의 멸망은 역사가들에게 미스터리였다. 일부 사가들은 이란고원에서 침입해 온 구티인(人)에 의해 멸망했다고도 하고, 고고학자들은 인구의 과대 증가, 변방에서의 반란, 유목민의 침입, 무능력한 관리 등이 이유였다고 말한다. 신화에서는 나람신 왕의 오만으로 신이 징벌해 망했다고도 전해진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아카드 제국의 멸망 원인을 주장하지는 못했다.


갑자기 사라진 아카드 제국

1993년, 고고학자와 지질학자, 토양과학자로 이뤄진 미국과 프랑스 공동 연구팀이 연구에 나섰다. 연구팀은 폐허가 된 아카드 제국의 도시에서 토양의 수분을 최첨단 과학기법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지금부터 4천200년 전부터 약 300년 동안 건조화로 인한 극심한 가뭄이 지속됐음을 밝혀냈다. 아울러 아카드 지방의 북부 도시에서도 동일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300년 동안 기후 대격변이 있었음을 나타내 준다. 아카드 제국은 기후 건조화로 말라붙어 버린 것이다.

수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던 곡창지대는 가뭄으로 사라졌다. 기후 건조화는 중동 지역 전체를 황폐화시켰다. 사람들이 물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나가면서 도시와 대부분의 촌락은 버려졌다.연구팀은 아카드 제국의 북부 지방 고고학적 발굴에서 나타난 이상한 현상도 연구를 통해 설명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갑자기 남부지방으로 이동했다는 글이 토기에 새겨져 있다. 이것은 가뭄이 먼저 북부지방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되며, 가뭄으로 인해 사람들이 남쪽으로 이동을 하자 남부 도시들은 인구가 두세 배로 증가했고 이로 인해 식량과 물이 부족해지면서 아카드 제국의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기후학자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멸망에는 가뭄 외에 기온 저하도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세계 각지에서 수집된 화분 분석의 결과 기온도 차차 내려가 당시에는 2℃나 낮아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평균기온 2℃의 하강은 농작물의 생장에 치명적이다. 결국 고대인들은 가뭄과 기온 저하로 농경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예일대 고고학자 하비 웨이스 교수는 “급격한 기후변화가 한 문명이 멸망하는 데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을 보여주는 첫 번째 사례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이 대가뭄은 지난 1만 년 사이에 일어난 주요한 기후학적 사건들 중 하나이며, 기후 변화가 인간의 생존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예”라고 말한다.

최초의 제국, 기후변화로 붕괴되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건조화라는 기후 변동으로 시작돼 건조화와 기온 저하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세계 최초의 제국인 아카드는 기후 변화로 인해 붕괴된 최초의 제국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태초에 밀물바다(압수·Apsu) 신과 썰물바다(티아마트·Tiamat) 신만 있었다. 둘이 결혼해 하늘의 신과 땅의 신을 낳았다. 땅의 신은 비의 신을 낳았다. 용의 형상을 한 썰물바다 신은 매우 악했다. 아름답고 선한 생명체가 많으면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착한 신들과 전쟁을 준비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착한 신들이 썰물바다 신을 설득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가자 비의 신에게 악한 신과 싸워줄 것을 부탁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창조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다른 문명과 달리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민물과 바닷물이 주(主)신이 된다. 이것은 기후와 지리적인 영향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생한 최초의 문명은 기원전 5000년께에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시작됐다. 이곳은 육지가 바다와 만나는 경계인 습지에 위치해 있다. 민물, 바닷물과 섞이는 습지가 메소포타미아의 창조 신화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Posted by Tessie.


........

댓글을 달아 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