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73권(구약46권,신약27권)의 성서가,결코 설화가 아닌,분명한 역사적인 진리임을 공부하라고 올리는 대단히 중요한 자료로서 보충자료입니다.필독할 포스팅이 3개 더 있네요.링크걸기한 글들이니 반드시 읽어주세요.



히타이트제국과 철기시대의 도래



히타이트제국 초기에는,철의 가치가 은의 40배가 넘었다.

 

 

히타이트족은,철을 이용한 무기제작으로, 당시 청동기시대에 속하는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인근부족들,이집트문명 국가들을 제압했다. 당시 지배세력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 클릭 ☞모세의 시대 BC 1300년무렵 (메소포타미아,이집트,동아시아)-하단 구세사 救世史참조

 

모세로 부터 첩보활동을 부여받고 잠복하여 이 지역사정을 미리 살펴보러 갔던 사람들이야기가 민수기 13장에 자세하게 나온다.이러한 철기문명의 위용에 기가 질린 이스라엘사람들은,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그들과 싸운다는 것은 자살행위임을 알고 모세에게 거짓말을 한다.그 땅에는 먹을만한것도 없고 너무나 척박한 곳이라고...그러한 성서내용을 역사적으로 고증해주고,성서내용이 분명한 사실의 기록임을 뒷받침해주는 민족이 바로 이 히타이트민족이다.

 

오늘 구글검색에서 찾은 자료는 한국에서 철강왕으로 통하는 포항제철 홈페이지에 나온 자료다.제목이,히타이트제국과 철기시대 도래,기원전 1200년경 이집트에 철기 전래 원문보기는 여기 클릭하세요☞http://cgi.postech.ac.kr/cgi-bin/cgiwrap/~gsim/technote/read.cgi?board=gsimSci&y_number=56

 

 

인류가 청동기 시대를 거쳐 철을 도구로 사용하는 철기 시대로 진입하는 데 가장 큰 획을 근 고대국가는 히타이트(Hittite)였다. 인류가 최초로 만든 철기는 쇠를 녹여 만든 것이 아니라, 쇠와 불순물이 섞여 있는 스폰지 형태의 덩어리를 달군 다음 해머로 단조해서 만든 것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도구를 만드는 방법은 히타이트인들이 처음으로 창안했다. 고대 아나톨리아 지방에는 철광석이 풍부하게 분포돼 있었다. 히타이트 제국은 하티(Hatti)를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에서 시리아, 팔레스타인에 걸쳐 있던 고대 제국이었기 때문에 아주 오래 전부터 철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기원전 15세기경에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소아시아에 인간이 만든 철기가 등장하지만, 히타이트의 하티에서는 이미 기원전 18세기경에 사용한 철기가 발견되고 있다.

:철 야금 기술은 기원전 1300년경 히타이트 제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해 이집트,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중국을 거쳐 우리 나라로 들어왔다.히타이트 제국 초기에 철은 금보다 5배, 은보다는 40배나 값진 물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기나 도구를 만들 때 사용할 수 없었다. 철로 무기나 도구를 만든 것은 기원전 14세기경이며, 기원전 12세기경에 와서야 철제 단검이 등장했다.

히타이트 제국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성장하다가 기원전 1600년경부터 1200년경까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지배했다. 기원전 1300년경 당시 히타이트 제국은 쇠를 녹여 야금하는 기술을 거의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히타이트 사람들은 아주 광폭하고 싸움을 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 이집트인들은 히타인트 사람들을 야만인으로 간주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투탕카멘 시대를 전후 해서 철기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투탕카멘 무덤에 있는 철제 단검은 히타이트에서 만든 것으로 봐야 타당하다. 기원전 1300년경 이집트의 강력한 파라오였던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 왕에게 철을 보내 줄 것을 부탁했지만, 히타이트 왕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이집트와 히타이트 사이에는 긴장이 고조돼 이집트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의 무알칼리스 왕은 기원전 1299년, 오늘날 시리아 근처에서 고대 중동 지역의 최대 격전 가운데 하나인 카데슈(Kadesh) 전투를 치렀다. 람세스 2세는 이 전투에서 자신이 승리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무승부로 끝난 전투였다. 16년 뒤 히타이트와 이집트는 평화 협정을 맺었다. 이집트에 철기가 전래된 것은 기원전 1200년경 람세스 3세 이후의 일이다.

기원전 1200년경부터 히타이트 제국은 아나톨리아 남부 해안을 따라 밀려 들어온 해양 사람들에 의해 멸망했고, 이후 히타이트 제국이 독점적으로 전하던 철 야금 기술은 이집트, 이란을 필두로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 나가 철기의 보편화를 가져 왔다. 임경순(포항공대 교수)

 

 


 

세계사의 미스테리-갑자기 사라져버린 히타이트제국

 

 

 

네이트지식에 어느 네티즌이 옮긴,히타이트유적지(현재의 터키)에 직접 여행한 소감 중에서 일부 - 히타이트인의 힘은 막강하여 당시 세계 최강을 자랑했던 바빌로니아를 멸망시켰다. 또 세계 최강국인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와 싸워 그의 군대를 크게 무찔렀다.이처럼 막강한 힘을 가진 히타이트 제국이라면 그 당시 세계 문명의 중심지였던 오리엔트를 정복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러나 그들은 약 500년 정도의 화려한 번영을 누리다가 갑자기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마치 해가 지면 그림자가 사라지듯이. 따라서 과거에 강력한 히타이트 제국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히타이트 제국이 번성했던 아나톨리아 고원은 이 제국이 갑자기 멸망한 후 400 ∼ 500년 동안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강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히타이트인이 살았던 하츄사와 카파도키아는 이들이 멸망을 한 후, 2700여년동안 건물 하나 지어지지 않은 채 황폐한 곳으로 남아 있다.사라진 고대왕국의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는 언제 풀리려나?


 


 

 성경은 역사적 진리다.무신론자 클릭 ☞  계시종교란 무엇인가14,전례력 해석-바오로 사도의 회심,1월25일

 

 

 

 

 

[성서의 풍속] 이스라엘 민족과 헷족

 평화신문, 제741호(2003년 9월 28일),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 총회장에 들어가면 오른쪽 벽에 힛타이트와 이집트 사이의 평화 조약문이 전시되어 있다. 설형문자로 쓰여진 이 조약문은 인류 역사상 평화 조약문으로서는 최초의 것이다. 이 조약문에 나오는 ’힛타이트’(Hittites) 사람들이 성서에 여러번 언급되어 나오는 헷족이다.

 

그런데 고고학적으로 힛타이트 족속에 관해 밝혀진 것은 지금부터 불과 100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기마술과 전차의 나라로 알려진 헷족은 세계사에서는 하나의 전설에 불과한 민족이었다. 헷족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활기를 띤 것은 20세기초 이집트의 파라오와 헷족의 왕 사이에 체결된 평화 조약문을 발견하고 나서부터였다.

 

헷족은 기원전 2천년께 오늘날 터키반도에 정착한 인도 유럽어를 사용하는 민족이었고, 아나톨리아 지방 정복을 통해 자신들의 제국을 확장해 나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터키 카파도키아의 화려한 고대 지하 도시의 건설자들도 헷족이라는 추측이 있다.

 

터키지역에서 힛타이트인들의 고대 유적이 발견되고, 그곳에 묻혀 있던 점토판 문서의 해독 결과 상당한 과학 문명이 발달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힛타이트인의 힘은 막강하여 당시 세계 최강을 자랑했던 바빌로니아를 멸망시켰다. 또 당시 강대국인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와 싸워 그 군대를 크게 무찌르기도 했다.

 

헷족은 전차와 역사상 처음으로 철을 성공적으로 무기로 이용한 민족이었다. 그들은 한때 시리아에 있던 여러 소국을 멸망시키고, 수도에 견고한 성벽을 쌓는 등 헷 왕국을 큰 제국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그러던 헷 왕국은 기원전 1200년께 갑자기 해양민족들의 침입을 받아 멸망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헷 왕국은 팔레스티나를 주무대로 역사를 이어왔던 이스라엘과는 직접 부딪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구약성서에서는 헷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여러번 나온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자 헤브론 땅의 막벨라에 있는 헷 사람 에브론 소유의 동굴을 샀다. 거기에 자기 아내를 묻고, 후에는 자기도 묻히고 아들 이사악과 후손들이 쓸 무덤으로 사용했다. 이 동굴을 아브라함에게 팔았던 사람들이 바로 헷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창세기 23 장 참조).

 

성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가나안족과 헷족과 아모리족과 브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출애 3, 8)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헷족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갈 때 이미 그 땅에 살고 있던 부족 중 하나였다(여호 3,10).

 

그리고 솔로몬 왕 시절에는 무역상들이 이집트에서 말을 사서 헷 왕들과 아람 왕들에게 되팔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2역대 1,17). 또한 로마시대 이전 말을 가진 힛타이트족과 당나귀를 기르던 셈족이 소아시아에서 접촉한 뒤 암말과 수당나귀의 접합으로 노새가 생겨났다는 재미있는 연구 기록도 있다.

 

그런데 성서에서는 헷족과 이스라엘의 직접적 영향 관계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헷족의 풍습과 문화에는 비슷한 점이 많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사울은 불레셋과 싸움을 앞두고 꿈이나 예언자들에게서 아무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되자 무당에게 사무엘의 혼령을 불러달라고 청한다(1사무 28, 3-14). 이것은 지하세계를 죽은 영혼과 만나는 장소로 여겨서 예식을 드리면서 신탁을 받았던 헷족의 풍습과 비슷하다.

 

또한 왕에게 기름 붓는 대관식, 계약 방식과 공적으로 모욕을 줄 때 신을 벗기는 것도 상당히 비슷하다(신명 25,5-10 참조). 터키를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지배하고 심지어는 이집트까지도 점령, 대제국을 형성했던 헷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과정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미 가나안 땅에 거주하면서 이스라엘의 문화와 종교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만은 확실하다.

 

 

 

[구약] 탈출기 모세의 기적 장소는?

'케두아 갑'(Kedua Gap)

 

- 나일 삼각주 동쪽 펠시움과 칸타라 사이 '케두아 갑' 유력 - 현재는 농경지…시속 63마일 바람 계속 불면 바다 갈라져 , -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건너간 갈대바다의 바닷물이 갈라진 장소가 케두아 갑이라고 과학자 칼 드류스는 말한다. [CNS]

 
 
구약성경 탈출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떠나 갈대바다에 이르렀을 때 이집트 군대가 이들을 다시 노예로 삼고자 추격해 왔다고 전한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원망했고, 모세가 하느님의 지시로 바다를 향해 손을 뻗자 바다가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이 무사히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모세가 다시 손을 뻗치자 갈라졌던 바닷물이 다시 합쳐지면서 뒤쫓아 왔던 이집트 군대는 물귀신이 되고 말았다(탈출 14,15-31).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건너간 홍해바다 갈라진 곳의 정확한 장소는 어디일까?

 

 

 

 

 

 

 

 

 

 

 

 

 

 

 

 

 

 

미국 가톨릭 통신 CNS는 최근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기사를 보도했다. 미국 콜로라도 주 보울더에 있는 영국 성공회 단체인 '에피파니 앵글리칸 펠로우십'회원인 과학자 칼 드류스의 연구 논문에 관한 것이다. 드류스에 따르면, 그 장소는 나일 삼각주 동쪽 펠시움과 칸타라 두 도시의 사이에 있는 '케두아 갑'(Kedua Gap)이다.
 
드류스가 구글 어스 프로그램을 이용해 표시한 케두아 갑의 좌표는 북위 30도98분12초, 동경 32도 45분 53초다. 하지만 이 지점은 지금 바다가 아니다. 과수원과 관개수로가 있고 포도원이 있는 농경지가 대부분이다."이곳 아랍 농가에 들어가서 문을 두드리고는 '바로 이곳이 모세가 걸어갔던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하고 묻는다면 재미있을 겁니다. 믿지 못하겠다는 답변이 나오겠지만 어쩌면 '글쎄요, 혹시 그럴 수도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지요."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해양 기상학을 공부한 드류스는 모세가 갈대바다를 건넌 것을 석사학위 논문 주제로 삼았다. 모세가 갈대바다를 건넌 탈출기 이야기에 매료됐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대학기상연구조합'(UCAR)에 따르면 이 연구는 바람이 심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프로젝트 일환으로 이뤄졌다."지중해 남쪽에 바다가 갈라져서 건너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냄으로써, 이 연구는 바다가 갈라지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를 연구하려는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대학기상연구조합은 밝혔다.
 
드류스와 해양전문가 웨이킹 한은 고고학 기록들과 위성 측정 자료 그리고 현재 지도를 분석해서 약 3000년 전 이곳 바닷물의 흐름과 깊이를 산출해 냈다. 그런 다음 해양 컴퓨터 모델을 이용해서 그 지역에서 하룻밤 사이에 바람이 물을 얼마나 몰아낼 수 있는지를 측정했다.
 
그 결과 시속 63마일(약 101km) 속도로 12시간 동안 바람이 계속 불면 6피트(약 183cm) 깊이의 물을 밀어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게 되면 길이 2~2.5마일(약 3.2~4.8km), 폭 3마일(약 4.8km)의 개펄이 약 4시간 정도 생기는 것으로 추산됐다. 바람이 그치면 물은 즉시 다시 합쳐진다고 대학기상연구조합은 설명했다."탈출기에는 바람의 지속 기간과 방향 같은 이 컴퓨터 모델을 뒷받침하는 자세한 내용들이 나온다"고 말한 드류스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닷가에 죽어 있는 이집트인들을 보았다고 하는데 컴퓨터 모델을 통해 작업하면 똑같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과학적 분석과는 별도로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필요로 할 때에 홍해가 갈라졌다는 것이 바로 기적이라고 드류스는 주장했다.드류스는 또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하시고자 하시면 자연 활동을 이용해 당신 계획을 이루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평화신문, 2011년 2월 13일, 이창훈 기자]

 

여기 클릭 나는 왜 한국의 선비정신에 필이 꽂혔는가?

 





Posted by T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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